이 고분이 있는 마을 이름이 금척리이다. ‘금척(金尺)’이란 글자 그대로 ‘황금으로 만든 자(尺)’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가 건국되고 혁거세거서간이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첫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려고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느 날, 어린 임금이 대궐의 뜰에서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말했다. “저는 하늘의 사자(使者)입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나라를 축복하기 위하여 ‘이 금자[金尺]를 선물로 갖다 드려라’ 하므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금자는 앓는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다시 살아나는 보물입니다.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임금은 하늘에 절하고 금자을 받았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창고에 소중하게 보관하도록 하였다. 그 후 혁거세거서간과 알영왕비는 어질게 백성을 다스렸으므로 나라 안이 화목하고 농사도 잘 되어 태평세월이 계속되었다. 임금도 백성들도 이것은 하늘이 축복해준 금자의 덕인 줄로 알고 이를 소중히 여겼다. 당시 중국의 한(漢)나라 왕이 신라에 ‘금자’라는 보물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금자를 빌려달라고 했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물었다. “금자를 빌려주는 것이 좋겠는가, 안 빌려주는 것이 좋겠는가?” 그러자 한 신하가 나서서 말했다. “한나라는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교만한 나라입니다. 금자를 빌려주면 우리 신라를 업신여겨 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신하가 말했다. “한나라는 자기네 나라가 부강한 것을 믿고 이웃 작은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만일에 그러한 보물을 한나라가 갖게 된다면 이웃 작은 나라들을 더욱 괴롭힐 것입니다. 금자를 보내서는 아니 되옵니다.” 마음씨가 착한 임금이 걱정스레 말했다. “아무리 귀중한 보물이라 하더라도 잠깐만 보고 주겠다는데 그것도 못한다면 어찌 이웃 간의 의리가 되겠소. 못 주겠다는 구실이 분명해야 하지 않겠소” 이에 또 한 신하가 나섰다. “그 금자를 땅속에 묻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목숨이란 한도가 있는 것인데 죽어야 할 사람을 그러한 보물로서 자꾸만 살려놓는다면 마지막에는 나라 안에 인구가 차고 넘쳐 새로 태어날 자손들이 크게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보물을 가짐으로서 공연히 강한 나라의 욕심을 자극하여 침략을 받을 염려도 없지 않으니 땅속에 묻어 버리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임금이 그 의견을 옳게 여겨 그 금자를 땅에 묻어 큰 무덤처럼 만들게 하였다. 신하들은 다시 임금께 아뢰었다. “한나라는 넓고 큰 나라이니 만일 금자를 땅에 묻었다는 기미를 알게 되면 곧 파내어 갈 것이므로 금자 무덤 주위에 더 많은 무덤을 만들어서 어느 곳에 금자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임금이 이를 받아들여 여러 개의 무덤을 만들어 그 가운데 한 곳에 금자를 묻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라 사신이 와서 금자를 빌려 달라고 하였다. 이에 임금이 말했다. “이웃 나라에서 금자를 잠깐 빌려 달라하시니 어찌 못한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금자가 너무 귀중한 보물이라서 땅속에 묻어두었습니다. 그래도 도적들이 훔쳐갈까 두려워서 그 주위에 많은 무덤을 만들어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먼 길 오셨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 사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무덤들을 모두 파보면 될 것이 아닙니까. 그 자를 묻은 무덤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 주시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사신이 수많은 무덤을 보고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세월이 지나, 무덤 속에 금자를 묻은 사람도 죽어버려 신라에서도 금자가 들어있는 무덤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도 금자는 금척리 고분군 중 어느 무덤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일본인이 황금자가 탐이 나 발굴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뇌성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노한 것이다. 사방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고, 밤낮 1주일간 빗줄기가 끊일 줄 모르게 내려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일대는 대홍수가 났다. 일본인 발굴단은 부득이 철수하는 길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누구도 이 금척 고분에 대하여는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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