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傳)희강왕릉과 전(傳)민애왕릉에서의 상념 - 권력의 무상 그리고 그 무엇
동경 129도 10분. 북위 35도 40분. 동서남북 사방 500미터의 정사각지형 안에 역사의 인물 두 분이 고히 잠들어 있다. 약 400미터 떨어진 표고 139미터와 128미터의 조그만 두 봉우리 정상 부근에 비극적 운명의 두 신라왕이 묻힌것으로 알려지는 傳민애왕릉과 傳희강왕릉이 있다. 지난 12월 14일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게이트 서편의 율동 아래각단 마을 서편 산 자락의 그 곳을 찾아 보았다.
신라왕조 992년 동안 56분의 임금이 계셨으니, 한 임금 당 평균 17년 9개월의 재임기간 이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박혁거세왕(61년), 진평왕(54년), 내물왕(47년), 흘해왕(47년), 눌지왕(42년)처럼 장기집권(?)한 분도 많지만, 신무왕(4개월), 민애왕(2년), 정강왕(2년), 희강왕(3년)처럼 단기낙마하신 분들도 있었다. 그 중에 특히 희강왕과 민애왕은 한 때는 동지였으나, 권력의 탐욕 때문에 다시 원수가 되어버린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들이다. 신라왕조 42대 흥덕왕이 죽자 삼촌인 균정과 왕위 다툼을 벌이던 김제룡(희강왕)은 김명(민애왕)의 도움으로 서기 836년에 왕이 되지만 838년에 김명(민애왕)이 반란을 일으키자 자진하였다. 자신이 추대했던 희강왕을 죽게한 뒤 권력을 잡은 민애왕도, 청해진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균징의 아들 우징(신무왕)에게 살해당하여 2년의 짧은 왕좌자리를 내놓았다. 838년 4월에 왕이 된 신무왕(우징)도 그 해 7월 병으로 죽어 천년 신라왕조의 가장 단명한 임금으로 동방동에 그 능이 전한다. 희강왕과 신무왕은 사촌관계고, 두 분 모두 민애왕과 6촌지간이다. 그리고 세 분 모두 원성왕(38대)의 증손자들이다. 참 권력에 눈이 어두워지면 피도 눈물도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진가보다.
12월이면 난 비극적인 역사를 자주 떠올린다. 12월은 대통령 선거의 달이기도 하다. 고교시절 겪었던 부마사태와 10.26에 뒤이은 12.12군부사태를 난 아직 선명하게 기억한다. 혁명동지였던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도 차례대로 임금 자리에 올랐지만 지금은 잘 만나지도 않는 안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철창동지도 되었었다. 한 때 혁명동지였다가 원수지간으로 변한 희강왕과 민애왕이 이 생에서의 원한을 저 생에서나마 서로 화해를 했는지, 아무도 찾는이 없는 쓸쓸한 산야의 한 자락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행정구역상 내남이지만 사실은 탑정동 아래각단 마을에서 내남면 망성1리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 양측의 작은 봉우리에 자리한다. 그런데 막상 두 왕릉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 쓸쓸하고 입구의 표지판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傳민애왕릉은 지름 12.5미터의 작은 원형봉분으로 3단 장대석에 갑석까지 덮어서 제법 왕릉다운 위용을 갖추었으나, 傳희강왕릉은 사실 봉분 서쪽에 작은 호석이 돌출된 것을 제외하곤 사적지 표지판만 없으면 누구라도 왕릉으로 보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무덤이다. 한때 동지였지만 반란을 일으킨 민애왕이 희강왕의 릉을 잘 만들어 주었을리 없으므로 현재 전 희강왕릉의 초라한 모습은 이해가 간다치자! 하지만 아버지(균정)의 숙적인 민애왕을 살해한 신무왕이나 그의 아들 문성왕이 민애왕의 무덤을 잘 만들어줄리 없으므로 지금의 傳민애왕릉은 아무래도 고증학적 신빙성이 떨어져 보였다.
1984년 국립경주박물관 발굴조사시 작은 십이지신상 4개도 발견되었고, 능 주변에 서기 815년을 나타내는 중국 당나라 연호인 ‘원화십년(元和十年)’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골호(骨壺)도 발견되었다 한다. 815년이면 헌덕왕(41대왕) 재임시다. 傳 헌덕왕릉과 김유신 장군묘의 릉 주위에 십이지신상이 발견 된점, 왕릉 호석의 십이지신상이 나온 곳은 성덕왕,원성왕, 헌덕왕, 흥덕왕릉인 점등을 고려하면 지금의 傳 민애왕릉은 어쩌면 소성왕과 애장왕의 릉이 아닌가 하는 사견을 던져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혁명동지, 반란, 집권, 그리고 패배... 지난 대선후 지금까지의 진흙탕 정국을 보면 천 년전 희강왕,민애왕,신무왕의 비운이 자꾸 떠오름은 왜 일까. 傳민애왕릉 과 희강왕릉을 찾아보면 권력의 무상함을 뛰어넘는 더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생각케 한다.
사진설명: 혁명일등공신- 배신- 반란- 왕위등극 그리고 피살되는 비운의 주인공 민애왕이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전)민애왕릉,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