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혹은 은근히 강요하는 입장이다. 특히 성공한 아버지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많다. 이런 아버지들은 아들과 대화할 때 자신의 경험을 주절주절 늘어놓거나 다소 과장을 섞어서 말하기도 한다. 아들이 어려서 사리 분별 못할 때는 그냥 옛날이야기처럼 해주어서 그런대로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자식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그런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 식상해지는데도 정작 아버지 본인은 늘 새 이야기인 양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아들이 커갈수록 이야기할 내용은 떨어지고 대화는 하고 싶은 생각이 점차 강요와 간섭으로 바뀐다. 이른바 꼰대가 되는 것이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릴 때는 그냥 아버지가 하는 말이고 자기 수준에 맞추어 이야기해 주니 재미있어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 때쯤이면 아버지와 마주 앉는 것이 부담스럽고 피곤해진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귓등으로 들리고 함께 마주 앉기만 해도 ‘또 시작이군...’하는 식으로 겁부터 낸다. 사춘기는 그런 반탄력이 급성장하는 시기여서 자기만의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말에 딴죽을 걸거나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신을 간섭하거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는 아예 대화를 닫아버린다. 그런 습성이 아버지와 급격히 멀어지게 만든다. 아버지들은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당혹하거나 서운해한다. 자신은 달라진 게 없다고 믿는 반면 아들이 자랄수록 자신이 따돌림당하는 것 같아 당혹해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준 채 건성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아는 순간부터 아들에게 말 건네기가 두렵고 부담스러워진다. 그러나 영 등 돌릴 것 같던 아들들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그 자신도 어른이 되어 아들을 낳고 아버지가 되어 똑같은 과정을 밟을 때쯤 아버지의 말에 어떤 의미가 있었고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때쯤의 아버지는 늙고 병들어 말할 기운조차 없어져 그저 듣기만 하는 불쌍한 아버지로 변해있다.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 빅 피쉬(Big fish-2003)는 마치 공상영화처럼 그려졌으나 실제로는 위에서 말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변화와 이해의 과정을 설명하는 기발한 영화다. 영화는 팀 버튼이 만든 많은 영화들처럼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거대한 물고기, 외눈을 통해 죽음을 보여주는 마녀, 양을 통째로 잡아 먹는 거인,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고 주저앉아 버리는 유령마을, 샴 쌍둥이 여자가수, 서커스단과 늑대인간 단장, 무언가 어색한 은행 금고털이 등은 마치 팀 버튼 감독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나 만화처럼 흥미롭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 아들 윌에게는 이 모든 장치들이 황당무계한 아버지의 거짓말로 들릴 뿐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혀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아버지의 창고를 정리하러 들어가면서부터다. 거기서 어머니에게 전해진 아버지의 군대 사망통지서를 발견한 아들은 이때부터 아버지의 말이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궁금해진다. 하나씩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따라가고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게 되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온전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주인공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 결론을 찾아가는 방식은 어떤 영화보다 흥미롭다. 어느 아버지건 자식을 미워해서나 미덥지 않게 생각해서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꼰대가 되는 것은 사랑이 지나쳐서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아버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꼰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빅 피쉬는 그런 아버지들의 속 깊은 마음을 슬며시 아들들에게 알려주는 영화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 대화를 닫아버린 아들이 그 자신도 스스로 허풍쟁이가 되어 자신의 아들을 향해 과장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막을 내린 영화 빅피쉬. 이미 꼰대인 아버지와 새롭게 꼰대가 되어가는 아들이 함께 볼만한 영화다. “네 아버지의 삶에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너였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꼰대 아버지를 둔 대부분의 아들들이 가슴 깊이 들을 만한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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