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경주는 신라 천년 역사의 본고장이라고 한다. 고려·조선 시대에도 중요한 지방 도시였으며, 경주 곳곳에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산재해 있다. 경주는 우리 민족 역사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성지라 할 수 있겠다. 특히 경주 곳곳에는 신라 시대의 역사의 흔적과 이야깃거리가 수두룩하고 이후의 시대 흔적과 문화로 스토리텔링 등 관광산업에 접목해도 어느 곳보다 풍부한 자원의 보고나 마찬가지다. 근래에 국민소득의 증가와 여행문화의 발달로 인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경주를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 모든 나라에 빗장을 채우고 손발을 꽁꽁 묶어버렸던 3년여 간의 코로나 팬데믹도 이제 일상으로 회복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여행이 자유로워져 공항도 발디딜틈 없이 입출국자들로 붐비고, 주말에 차를 타고 잠시만 나와도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도로에는 차들이 멈춰서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좋고 유명한 관광지 많이 두고 경주에 왜 올까?
신라 천년 역사의 정취와 전통문화의 향취를 맛보려고 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접목한 놀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등 다양한 관광문화를 경주는 즐길 수 있는, 특히 황리단길이라는 젊은 층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전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이다. 경주에서 보문단지, 수학여행으로 한 번씩은 다녀간 불국사 석굴암을 가지 않더라도 황리단길은 가장 먼저 찾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경주의 길거리와 식당 카페 숙소들의 간판들을 보자. 물론, 황리단길 역시 포함해서다.
여기가 서양의 어느 곳인지 혼돈이 오지 않을까? 한 집 건너 한 집이 펜션이나 카페인데, 간판은 대부분이 국적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외래어 일색이다. 뭐하는 집인지 간판을 읽으려 알파벳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는커녕, 꼬인 혓바닥에 잘 읽히지도 않는 간판이 허다하다. 그곳이 카페인지, 술집인지, 용도조차 알기 어려워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필자뿐만 아니라 지인들에게서도 많이 듣는다. 황리단길에도 집들은 잘 단장한 전통 한옥식의 매력 넘치는 가게인데, 입구에 쓰인 상호나 업종들을 살피면 도대체 무슨 집인지 알기 어려워 발길을 돌린다. 집들은 한국인데, 간판은 온통 도무지 읽기도 어려운 국적 불명의 외래어 일색이다.
한국 속의 외국인 전용 업소인 듯한데, 또 창을 통해 보이는 손님들은 내국인들 뿐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의 가장 오랜 고도 경주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경주만의 상호로 이 찬란한 고도를 뽐내고 치장하여 특색 있는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는 없는지.
한동안 황리단길 주변에 서울 고궁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 주요 관광지에서 흔히 보는 우리 한복의 전통미에서 좀 벗어난 변형 한복 차림의 관광객이 거리를 누볐다. 그 한복을 볼 때마다 경주의 신라복이라면, 전국 어디에서도 입을 수 없는 경주만의 멋진 추억이 아닐까, 가장 경주다운 관광특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던 적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까, 차를 운전해 주변 길을 가는데, 전통 신라 복(옷) 차림으로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이보다 더 경주에 온 느낌이 또 어디에 있을까?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입어 볼 수 없는 복장이다. 경주에서만 내가 선덕여왕도, 무열왕도, 김유신도 화랑도, 원화도, 낭도도 … 오롯이 신라사람이 되어보는 기회이다.
그렇듯, 잘 단장한 카페나 펜션이나 여타 음식점이든 학교에서 배웠던 신라의 인물, 책 속에서 만났던, 혹은 TV 드라마에서 즐겨봤던 신라의 이름들을 상호로 내건 집들. 흥무, 춘추, 혁거세, 이사금, 마립간, 원효, 의상, 표훈, 요석, 이차돈, 연오랑, 세오녀, 미실, 도화랑, 보해, 미해, 아진, 비형, 각간, 알지, 시림(始林), 황룡, 감은, 송화방, 관창, 수로부인, 포석, 천관 …… 등등의 그 많은 이름에서 단어를 골라봤으면 어땠을까?
경주의 추억이 더 오래 남을 수많은 이름이 경주의 길 따라 골목마다 익숙하고 친근한 그런 간판들의 이름으로 만난다면, 그리고 경주를 찾는 이들과 역사의 향기를 전하고 또한 느끼고 돌아갈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필자의 생각이 촌스러운 것인지.
우리 역사와 민족혼이 담긴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글과 함께 하는 더 기억에 남을 여행이 아닐까. 그리고 굳이 경주 태생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경주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간판 단순한 상호 하나에도 이런 세심함이 자존심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면서, 경주의 맛과 멋! 바로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런 경주의 문화를 꿈꾼다. 경주에 가면 카페 ‘비형랑’에서 커피를 마시고, ‘각간’에서 수제 맥주를, 숙박은 ‘미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