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대학생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 한두 달 연습하고서 단 한 번 공연을 하거나 고작해야 2~3일 공연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이다. 공연이 끝난 후 졸업 동문들까지 함께 하는 뒷풀이는 회포를 푸는 자리다. 공연의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였고 마음의 허함을 채우는 자리기도 했다. 그때 남자 선배들 옆자리에는 여자 후배들을 앉혔다. 물론 자주 못 뵙는 선배님들과 후배, 특히 새내기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농담으로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맛있지.’하는 말이 당연한 시대였다. 그래서 아줌마가 새내기였을 때는 하늘 같은 선배님 옆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앉았었고 내가 선배가 되어서는 후배들이 내 옆에 앉았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어린 사내아이를 보고 ‘요놈, 고추 따먹어야지’하면 성추행이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 내 조카들이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인사말처럼 하던 말이 이렇게 된 상황이 당황스럽고 아쉽기도 하지만, 친근한 동네 어르신, 이웃사촌보다는 모르는 사람을 더 만나는 시대니, 당연한 결과라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시대가 변한 만큼 우리들의 성(性)문화., 성(性)인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n번방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짓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 사회 성인식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본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섬에 발령받은 선생님을 동네 남자들이 성폭행한 사건, 명문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동기 여자들을 외모나 성적 농담으로 비하한 사건, 초·중학교 동년배 친구나 후배를 집단 성폭행한 사건. 특히 이런 사건 중 가해자가 어리고 미래가 밝다며 소년보호처분을 받고 성인이 되어 다시 의대나 교대 진학, 의사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수 있다는 뉴스를 봤다. 그런 전력을 가진 사람이 의사나 교사로 우리 아이들과 만난다고 생각해봐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고 생각되는가? 아무리 성문법에 기초한 판결을 한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와 너무나 비교되는 성폭행, 성추행 관련 사건의 판결을 볼 때마다 뒷목을 잡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학교에서 성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는가?”모른다면 반성하자.“올바른 성문화, 성인식에 대해 우리는 어느 수준일까, 생각해봤는가?”제발 생각해보자! 올바른 성(性)문화, 성(性)인식 교육은 모두가 다 받으면 좋다. 하지만 제일 먼저 받아야 하는 사람은 윗대가리 분들이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사람, 권위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다음이 일반 사원들이란 소리다. 국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이런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안다. “이러이러하면 성추행입니다. 이러이러하면 ~” 이런 비슷한 레파토리의 교육일 것이다. 그런데 바쁘신 국회의원은 안 받고 말단 직원들만 교육을 받는다. 일반 회사도 비슷하다. 뭐가 잘못됐다는 걸 알겠는가? 국회나 일반 회사에서 성추행, 성폭력, 갑질 등 이런 문제를 일반 평사원들 사이에서 벌어질까, 아니면 간부급 이상에서 벌어질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가 느끼는 압박이 어디가 심할까?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가해자라면 피해자는 쉽게 거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 밑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성(性)문화, 성(性)인식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또한 성추행, 성폭행 관련 뉴스에서 가해자를 혼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쉽게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줌마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서움, 두려움을 느낀다. ‘짧은 치마가 문제라고, 그렇게 늦은 시각에 왜 돌아다녔냐고? 지가 무슨 꼬투리를 줬겠지….’ 아줌마, 올라간 혈압 간신히 낮추며 부탁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다. 왜 이따위 세상을 물려줬냐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힘이 약한 친구를 보면,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라고 우리가 가르치지 않았나? 그렇다면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해자를 엄벌하는지 언론을 통해 감시하고 후속 뉴스를 요구하고, 피해자는 지켜주는 것. 그래야 우리가 어른이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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