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바그너 필생의 역작이다. 그는 이 작품에 30년 가까운 시간을 쏟아 부었다. 4부작으로 구성되어 공연시간이 무려 15시간이나 된다. 당연히 엄청난 제작비가 들기 때문에 당시 ‘링 사이클(Ring cycle)’ 네 작품을 선뜻 수용하는 극장은 없었다. 그래서 바그너는 자신만의 극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꿈을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실현시켜 준 것이다. 1875년에 바이로이트 극장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링 사이클 네 작품 중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은 1869년에, ‘발퀴레(Die Walküre)’는 1870년에 뮌헨에서 초연되었다. 나머지 ‘지그프리트(Siegfried)’ 와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은 18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라인의 황금이 나머지 세 작품의 서주 역할을 한다. 바그너가 루트비히 2세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초대형 오페라 작품이 탄생했고, 유럽은 바그너의 음악극 열풍에 빠져 들었다.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작품이다. 그는 북유럽신화를 참고했다. 우리에겐 단군신화가 있고, 서양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듯이 북유럽에도 그들 고유의 신화가 있다. 니벨룽의 반지는 난쟁이 니벨룽 족 알베리히가 라인강에서 훔쳐낸 황금으로 만든 절대 반지에 관한 이야기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러나 저주가 걸린) 반지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보탄을 중심으로 한 신의 세계가 몰락하고, 지그프리트(바그너는 자신의 아들이름을 지크프리트로 했다)로 대표되는 인간들의 세계가 새로이 탄생한다. 전 세계적인 흥행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역시 반지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바그너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엄청난 제작비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니벨룽의 반지가 해외 프로덕션으로 두 차례(2005년 세종문화회관-마린스키, 2022년 대구오페라하우스-만하임)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2018년에는 국내 프로덕션(아힘 프라이어 연출)으로 야심찬 시도를 했지만, ‘라인의 황금’만 공연되고 후속제작이 불발되었다. 바그너의 음악사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바그너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그의 작품을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된 이유는 어찌 보면 이런 희소성에 기인한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공연되는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은 모두 10개다. 이를 ‘바이로이트 캐논(Bayreuth Canon)’이라고 하는데, 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② 탄호이저, ③ 로엔그린, ④ 트리스탄과 이졸데, ⑤ 뉘른베르크의 징거마이스터, ⑥ 라인의 황금, ⑦ 발퀴레, ⑧ 지크프리트, ⑨ 신들의 황혼, ⑩ 파르지팔이다.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마지막 음악극 작품(1882년 초연)으로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성배의 기사 파르지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타락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