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민주화운동을 그린 대표적인 대중영화를 꼽자면 단연 ‘화려한 휴가(2007/김지훈 감독)’일 것이다. 7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광주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알린 첫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이후 무려 27년만에 그날의 참상과 아픔, 분노를 제대로 알렸다.
그 10년 후에 만들어진 택시운전사(2017/장훈 감독)는 1200만이 넘는 관객에게 다시 한 번 광주의 진실을 공개했다. 이 영화는 광주의 진실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독일의 피츠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택시 운전사 김사복 씨의 일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두 영화의 중간에 만들어진 26년(2012/조근현 감독)은 앞의 두 영화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진실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것과 달리 남겨진 사람들이 남긴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만화가 강풀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으로 300만 관객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이들 영화에 대해 일부러 ‘대중영화’라는 수식을 붙였다. 국민 대중들이 마음 놓고 볼 수 있었던 광주 영화라는 의미에서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광주를 다룬 영화가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일부러 찍기 위해 큰 비용을 들이지도 않았고 재미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다소 억지스러운 연출도 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광주 영화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 이른바 운동권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지나쳤던 통과의례가 있다. 그게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그 다큐멘터리들은 아주 소수의 약속된 사람들에게만 몰래 공개되었고 그것을 보여주거나 본 사람은 철저히 그 사실을 숨겨야 할 만큼 위험한 영화였다. 그것을 보는 자체가 불법이었고 용공·좌경으로 몰려 감옥에 가야 하는 심각한 범죄로 여겨졌다.
그 당시 광주는 방송과 언론에 의해 철저히 ‘북한의 사주에 의한 역성 반란’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런 놀랍고 무서운 왜곡을 부정하고 광주의 참상을 알린 다큐멘터리들을 몰래 상영했으니 그것을 막으려는 독재정권의 감시가 얼마나 집요했을지 짐작될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독재자들의 전횡은 치열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무너졌다. 이와 함께 폭도들의 역성반란지로 왜곡되던 광주도 조금씩 정체성을 찾아갔다. 이른바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1998년 이후였다.
그러나 영남권 대다수 사람들과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오랜 세뇌에 갇힌 국민들에게 광주는 아직도 ‘빨갱이 반란지’에 머물러 있다. 헌법전문에도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넣겠다는 논의가 벌어지는데 한쪽에서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왜곡과 날조가 진행되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KBS가 ‘거리의 만찬’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광수를 찾습니다’는 제목의 시사물을 방영했다.
그 내용은 지만원 씨 등 일부 극우 인사들이 주장하는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에 나온 600명의 북한 군인, 현재는 북한의 고위층으로 행세하는 인물들’의 허구를 밝히는 것이었다.
여기에 출연한 인물들은 극우 인사들이 주장하는 북한의 고위층이라는 말과 달리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임은 물론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북한의 고위층으로 왜곡한 극우 인사들은 1980년대 광주를 역성반란지로, 살육과 폭력진압을 정당하다고 왜곡한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제대로 민주화운동으로 공감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모른 채 단순히 광주에 무슨 명예를 주는 것쯤으로 안다. 그러나 광주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앞으로 언제 생길지 모를 또 다른 독재자를 막는 효과가 있다. 광주를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인식함으로써 42년 전 총칼을 앞세워 광주와 국민을 기만했던 독재자들을 확고히 심판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힘 있는 자들이 함부로 날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광주의 참상을 묘사한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 ‘26년’이 아무렇지 않게 제작되고 국민의 호응을 얻은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이 민주화 됐다는 반증이다. 그 민주화의 정점에 광주가 있기에 대한민국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광주의 혜택을 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그 민주화의 혜택은 광주를 부인하는 영남권 국민과 수구 세력들도 함께 누리고 있다. 그런 광주에 대해 지역의 이기심이나 정파의 이익으로 부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또 다른 독재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목에 스스로 칼 겨누는 바보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