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2세의 후원으로 당시 기준으론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초연(1865년)한 바그너는 3년 후에 대중친화적인 작품을 발표한다. 바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이다. 이 작품은 10개의 바이로이트 캐논 중에서 유일한 희가극이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이전 작품과는 달리 신화에 근거하지 않은 바그너의 창작물이다. 시공간적 배경은 상공업이 발달했던 16세기 뉘른베르크다. 당시 뉘른베르크는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길드를 조직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자유도시였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한스 작스(Hans Sachs/1494-1576)라는 인물은 제화장인이면서 6170개의 시작품을 남긴 실존했던 마이스터징거다.
마이스터징거는 13세기에 유행했던 음유시인(吟遊詩人)과 구별하기 위해 보통 장인시인(匠人詩人)으로 번역된다. 본업은 장인이고, 부업이 음악가인 사람들이다. 단지 노래만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시,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이기에 마이스터징거를 ‘명가수(名歌手)’로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냥 원어 그대로 ‘마이스터징거’로 부르는 것이 좋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금세공업자인 포그너는 노래경연대회를 열고, 우승자에게 자신의 딸 에바를 주기로 한다. 젊은 귀족기사 발터가 (에바를 짝사랑한) 한스 작스의 도움을 받아 유력한 경쟁자 메크베서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다. 발터는 사랑하는 에바와 결혼하게 되고, 에바의 하녀인 막달레네와 한스 작스의 견습공인 다비드도 아름다운 한 쌍의 부부가 된다. 해피엔딩이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이탈리아의 베리스모(verismo)에 견줄 수 있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꽤 현실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특히, 여성의 희생에 의한 남성의 구원이라는 관점을 탈피했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에바는 연인 발터를 위해 죽지 않는다. 그냥 보통 여인일 뿐이다.
바그너는 작품을 통해 진보파인 자신의 음악을 맹렬히 비난하는 보수파에 대하여 응징을 감행한다. 작품에서 기존 형식을 깨뜨리고 파격적인 노래를 부르는 기사 발터는 바그너 본인이다. 반면, 발터의 파격적인 음악을 비판하는 메크베서는 보수파의 심장인 한슬리크(Eduard Hanslick/1825-1904)다. 결국 발터의 우승은 보수파의 패배를 의미하는 셈이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히틀러가 최애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품 말미에 한스 작스가 독일 민족의 단합(실제로 독일은 1871년에 통일된다)을 촉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유럽의 민족주의 열풍을 반영한 것이다. 베르디의 ‘나부코’처럼, 바그너는 독일인의 애국심을 자극하여 초연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히틀러가 나찌의 선전선동 도구로 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작품을 활용한 건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