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無影塔 )과 영지 ( 影池 )를 생각하며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인 빙허 ( 憑虛 ) 현진건님의 서울 부암동 옛집이 헐렸다고 문학인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특히 그 집은 말년을 보내면서 소설 무영탑을 집필 했던 곳이라하니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경주의 사람들도 섭섭함을 금할수 없다. 현진건 님은 대구에서 출생하여 1920년 "개벽"을 시작으로 "빈처" "운수좋은날" " B사감과 러브레터"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938년에 발표한 "무영탑"은 신라 예술의 극치인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소재로한 소설로 백제의 장인 ( 匠人) 아사달과 그의 아내인 아사녀가 주인공이되어 탑을 조성하는 예술인의 집념과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우리 경주시민들은 누구나 알고 있을것이다. 서울 고택의 철거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문학적 체취를 느낄수있는 장소가 없어졌다는 것인데 대구의 생가도 없어진지 오래고 보면 어쩌면 물질 만능의 시대에 묻혀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쉽게 받아드릴런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21C는 문화의 시대라고 힘있는자들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이렇게 용기있게 외면 한다면 민족의 토양위에서 영원한 우리문화가 꽃을 피울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영탑 소설의 무대인 영지가 불국사와의 거리로 보아 탑의 그림자가 비칠리는 없겠지만 전설이되고 이야기가 된것은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있는 예술혼, 그리고 지고한 사랑이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보탑과 석가탑의 높은 문화재적 가치에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적 요소들을 주변에 뿌려 놓으 므로써 천년이 지났어도 생명력있는 문화재를 보게 되는것이다. 우리는 외국의 사례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의미를 부여하여 관광 상품화한다는 이야기를 듣곤한다. 유럽 코펜하겐 항구의 인어공주는 작은 한개의 청동상에 불과하고 "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 으로 시작되는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은 어디서나 흔히 볼수있는 절벽에 불과한데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한다. 우리는 여기서 영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영지는 세월탓에 을씨년 스럽지만 하늘의 구름을 담은채 작은 바람에도 일렁거리는 모습과 신라시대부터 자리를 지키고있는 아사녀의 모습으로 조각된듯한 불상을 보면 아직도 옛 정취를 조금은 느낄수 있다. 이러한 영지를 관광자원화 하면 어떨까? 선남, 선녀들이 사랑을 약속하면서 다정히 걸을수있는 산책로도 만들고 아사달과 아사녀의 동상을 만들어 가족에 대한 사랑도 일깨우고 현진건님의 동상도 만들어 그의 체취를 이곳에서 느끼게 한다면 그는 영원한 경주인이 될것이다. 더우기 밝은 달이 영지에 비치고 멀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밤에는 문학인들의 작은 행사도 매년 개최하면 더 좋을 것이다. 또한 불국사 주변에 한국근대 문단의 거두이신 동리, 목월님의 기념관이 세워지고 있으니 앞으로 영지에 한국 문학인들의 광장도 만들어 진다면 문학인들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영지를 찾을 것이다. 이제 경주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엮고 시민들의 정성으로 포장을 하여 종합 선물 세트를 만들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수준 높은 선물을 주자. 그래서 선물세트를 사러 줄을 서게 한다면 부자도시 경주가 될것이 아닌가. 경주시청 관광진흥과장 서용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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