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부음을 들을 때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도 멀지 않아 세상과 이별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된다. 몽테뉴(Montaigne, M.)의 『수상록』에 다음과 같이 구절이 있다. “어디에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곳곳에서 기다리지 않겠는가!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 이제라도 죽음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문무왕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해방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몽테뉴를 능가하는 생각을 가진 왕이었다. 문무왕은 통일을 완성한 후에도 큰 근심거리가 있었다. 바로 수시로 바닷가에 상륙해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 문무왕은 죽은 후에라도 왜구를 막겠다고 서원하고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을 해 동해상의 큰 바위, 즉 지금의 대왕암에 장사를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왕이라면 현세는 물론이고 내세에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문무왕은 달랐다. 죽음이 다가오는 중에도 자신의 평안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어쩌면 나라를 걱정하며 눈을 감지 못한 것은 아닐까? 문무왕의 유언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삼국유사』 「기이」편 ‘문무왕 법민’조에는 지의법사에게 남긴 왕의 유언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짐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교를 받들고 나라를 보위하겠노라” 이어 법사와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용은 축생인데 어찌 용이 되려 하시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가 오래 되었소. 만약에 추한 인연에 따라 축생이 된다면 이는 내가 바라는 바와 꼭 맞는 것이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는 왕의 유언을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과인은 어지러운 때에 태어난 운명이어서 자주 전쟁을 만났다. 서쪽을 치고 북쪽을 정벌하여 강토를 평정하였으며, 반란자를 토벌하고 화해를 원하는 자와 손을 잡아, 마침내 원근을 안정시켰다. 위로는 선조의 유훈을 받들고 아래로는 부자의 원수를 갚았으며, 전쟁 중에 죽은 자와 산 자에게 공평하게 상을 주었고, 안팎으로 고르게 관작을 주었다. 병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천수를 다하도록 하였으며, 납세와 부역을 줄여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하여, 백성들은 자기의 집을 편하게 여기고, 나라에는 근심이 사라지게 하였다. 창고에는 산더미처럼 곡식이 쌓이고 감옥에는 죄수가 없어 풀이 우거졌으니, 가히 선조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었고, 백성들에게도 짐진 것이 없었다고 할만하였다. 내가 풍상을 겪어 드디어 병이 생겼고, 정사에 힘이 들어 더욱 병이 중하게 되었다. 운명이 다하면 이름만 남는 것은 고금에 동일하니, 홀연 죽음의 어두운 길로 되돌아가는 데에 무슨 여한이 있으랴! 태자는 일찍부터 빛난 덕을 지니고, 오랫동안 동궁의 자리에 있었으니, 위로는 여러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낮은 관리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를 보내는 의리를 어기지 말고, 산 자를 섬기는 예를 잊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라도 비어서는 안 될 것이니, 태자는 나의 관 앞에서 왕위를 계승하라. 세월이 가면 산과 계곡도 변하고, 세대 또한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오나라 왕 합려의 북산 무덤에서 어찌 향로의 광채를 볼 수 있겠는가? 위나라 왕 조조의 서릉에는 동작이란 이름만 들릴 뿐이로다. 옛날 만사를 처리하던 영웅도 마지막에는 한 무더기 흙이 되어, 나뭇꾼과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팔 것이다. 그러므로 헛되이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역사서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더라도 나의 혼백을 구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을 조용히 생각하면 마음 아프기 그지없으니, 이는 내가 즐기는 바가 아니다. 숨을 거둔 열흘 후, 바깥 뜰 창고 앞에서 나의 시체를 불교의 법식으로 화장하라. 상복의 경중은 본래의 규정이 있으니 그대로 하되, 장례의 절차는 철저히 검소하게 해야 할 것이다. 변경의 성과 요새 및 주와 군의 과세 중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잘 살펴서 모두 폐지할 것이요, 법령과 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즉시 바꾸고, 원근에 포고하여, 백성들이 그 뜻을 알게 하라. 다음 왕이 이를 시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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