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오늘도 아침잠 많은 아들을 힘들게 깨우고 있다. “이제 고등학생이면 알아서 일어나야지 않겠니?” 하고 잔소리를 하는데 녀석이 빈손을 내밀며 “아빠, 내 아이스크림 어딨어?” 이런다. 뭔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지만 주변을 살피는 녀석의 얼굴은 꾀나 심각하다. 아마 아이스크림 먹는 꿈을 꾸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은 누구나 꿈꾼다. 하루에 한 번 꾸는 줄 알지만 사실은 한 시간 반 단위로 꾼다. 우리가 어설프게 기억하는 꿈은 그 마지막 꿈일 뿐이다. 샤워하러 욕실로 걸어가면서 그런다. “이제 막 먹기 시작했는데...” 아쉬웠나 보다. 그렇다고 녀석의 꿈속으로 대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외로운 존재들이다.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단상들, 느낌 등등을 우린 결코 공유하지 못한다. 꿈이고 현실이고 간에 우리는 철저히 혼자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하나지만,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 수만큼 우린 각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꼬맹이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울면서 이러더란다. “엄만 어디 갔었어?” 놀이터에서 형아들끼리 노느라 자기를 안 끼워줬던 모양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천진함이 귀엽다.
이러한 인간의 생래적 한계에 어쩌면 실금이라도 낼 것 같은 희망이랄까?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뇌 속의 혈류 변화 등의 데이터로 인공지능은 인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려낼 수 있다고 한다.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아들 녀석의 꿈속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올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무슨 문제를 풀었는지 누구랑 잡담을 하는지도 말이다.
오사카대학의 연구가 기대되는 건 인간의 뇌에 인공지능을 연결하려는 시도에 있다. 후두엽과 측두엽 등 인간의 뇌 속에서 흐르는 피의 움직임 그 방대한 데이터를, 요즘 가장 핫한 인공지능(AI)으로 학습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인지하는 대상(A)과 인공지능이 재현해 내는 이미지(B)와의 싱크로율(비교 대상이 서로 같거나 들어맞는 비율)을 높이는 학습 과정이 연구의 핵심 내용이다. 가령 내가 보고 있는 저 빨간 자동차와 내 혈류를 해독한 인공지능이 내놓는 이미지가 똑같을 때까지 반복해서 학습시키는 것이다. 논문에 실린 이미지 자료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시간의 도움으로 첨단 기술이 인간의 근원적인 고립을 해방시켜 줄지 두고 볼 일이다.
허물어졌음 싶은 꿈의 한계는 또 있다. 어떤 인간도 꿈을 꿈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시간도 없고 공간 개념도 없는, 정말 ‘개꿈’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거짓 세상을, 우린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꿈에 분명 자신은 나비였는데 깨어보니 장주 자신이더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나비의 비유는 (장주의 꿈속) 장주가 나비인지 (나비의 꿈속) 나비가 장주인지 묻고 있다.
불교 인식론[唯識學]의 주장은 이렇다. 나와 함께 지금 대화하고 있는 대상은 사실 상대 곧 타자(他者)가 아니란다. 오히려 나라고 해석한다. 눈에 보이는 저기 저 높은 빌딩도, 지금 내 코에 이렇게 분명한 커피 향도 모두 나라고 말한다. 근거는 이렇다. 가령 내(인식주체)가 강아지(인식 대상)를 보고 있다고 치자. 아들이 하도 졸라서 새 식구가 된 하얀색 시추 종인데, 기분이 좋은지 혀를 쏙 내밀고는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다. 이걸 인식론적으로 정리해 보면 하나의 인식 현상[아이고 귀여워!]은 그 주체[나]와 대상[시추]이 전제되었을 때만이 작동한다. 주체와 대상으로 마련된 인식의 토대를 마음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나고 시추는 시추지만, 시추나 나나 모두 동일한 인식환경[마음] 속에 있다는 점에서 ‘내가 곧 시추고 시추가 곧 나’인 셈이다.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나[我]는 대상[物]과 한 몸[一切]이다.
오사카대학 연구팀은 인간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하고 그 자료를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도록 입력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미지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는 다짐이나 속삭임 생각이나 느낌으로 가득하니, 길은 멀겠지만 꿈을 잃지는 말자. 꿈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