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포화 속에 몰아넣은 2차 세계대전의 원흉 아돌프 히틀러는 미술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던 인물이다. 그가 빈의 미술 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응시했지만 결국 떨어지고 결국 군에 입대하면서 희대의 살인마로 변한다. 미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진주한 유럽 각 지역의 미술품들을 약탈해 ‘총통 미술관’을 지을 야심에 들 떠 있었다. 그 결과 희대의 걸작들을 독일의 광산에 숨겨두는 만행을 저질렀고 만약에 그가 전쟁에 패하거나 그 자신이 죽을 경우 이들 예술품들을 모두 폭파하거나 불 지를 것을 명령한다. 영화 ‘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2014/조지 클루니 감독)’은 히틀러의 야욕을 알아채고 이를 저지해 미술품들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려는 연합군 측의 특수부대 ‘모뉴먼츠 맨’의 행적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특수부대의 구성원이 정말 ‘특수’하다. 코만도나 람보 같은 무지막지한 전사가 아닌 미술관장, 미술 감정가, 건축가, 미술품 거래상, 조각가 등으로 구성된 7명의 미술가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1943년 결성되어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약탈당한 미술품을 찾아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 끝에 500만 점 가까운 미술품을 되찾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부대원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 영화는 미술 작품을 위해 목숨을 건 특수부대의 활약을 그리면서도 ‘과연 미술품을 위해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가?’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그러나 극 중 대사에서 보듯 미술품을 되찾겠다는 지순한 마음은 한결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는데 누가 예술에 신경 쓰냐고? 한 세대의 인류를 휩쓸어 버릴 수는 있지만 문화와 우리의 삶의 방식은 결국 모두 돌아온다. 미술을 없앤다면 역사와 존재의 근거를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이것을 막기 위함이다” 비단 히틀러의 망상뿐 아니라 세계의 박물관을 방문하다 보면 숱한 약탈 문화, 약탈 미술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마주치게 된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 같은 세계적 박물관은 자국의 미술품이나 유물보다 해외로부터 약탈해온 것들이 절대적으로 더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숱한 시대별 문화재들을 일본에 강탈당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 같은 분들이 일제의 문화재 침탈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 많은 약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경주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일본에 약탈당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현재 청와대 뒤뜰에 고향을 잃은 채 외롭게 서 있는 석불좌상 역시 일제가 밀반출을 시도하려다 남겨둔 경주 불교문화의 대표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 화해하겠다는 다양한 구상들을 내놓곤 했지만 일본은 끝내 진정 어린 사과는커녕 국민의 관심사인 위안부, 징용에 대한 문제, 독도 영유권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때라는 듯’ 더 강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일제강점기에 강탈당한 문화재 환수에 대한 말은 윤대통령 뿐 아니라 여야 정치인, 언론 등에서조차 일언반구 말이 없다. 비단 현 정권뿐 아니라 해방 후 20대 대통령이 선출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어떤 정권도 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무관심하게 지나왔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 국민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경주시민들이 심각하게 되새겨보아야 할 문제도 여기에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경주에서 출토된 다수의 금관, 기마인물상, 천마도 등 경주를 대표할 만한 귀중한 문화재들이 모두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선조들의 위대한 작품이 더 안전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 전시되어 더 크게 빛을 발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다분히 경주가 문화적 역량이 모자랐을 때의 논리다. 이제 경주도 경주의 문화재를 지킬 만큼 역량을 갖추었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경주의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운동이 필요하다. 만약 그럴 역량이 없다면 온 힘을 다해 그 힘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고 박물관이 서울에 비해 열악하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땅히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작품은 프뤼해 성당에 있던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과 천주교의 상징과 같은 얀반 에이크의 ‘캔터 제단화’다. 그에 비해 일제에 의해 사라진 다보탑 사자상과 서울에 가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못하지 않을 것이다. 미술작품은 원래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영화 모뉴멘츠 맨은 분명히 보여준다. 경주를 떠난 문화재들은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국가적으로나 경주 자체로나 모뉴멘츠 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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