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인) 현대자동차 광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외국인이 ‘올해의 차’로 선정된 현대 자동차 광고판을 뚫어지게 보더니 급기야 핸드폰을 꺼낸다. 위치 검색용 앱을 켜고는 “하현다이”라고 또박또박 발음을 한다. 요즘은 음성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는 세상이다. 이제 제일 가까운 현대 대리점이 뜨겠지? 지도상의 특정 위치에 목적지 표시가 뜨자 남자는 앱이 알려주는 대로 걸어간다. 마침내 도달한 목적지에는 ‘하이 앤 다이(High N Dye)’라고 쓰인 미장원이 떡! 하니 그를 맞는다. 아, 발음이 문제였다. 사람이었다면 재차 확인이라도 했을 텐데 앱은 들리는 대로 반응을 할 수밖에. 광고는 비슷한 느낌의 상황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금발의 한 여인은 갑자기 눈이 뚱그레진다. 그녀 앞에는 ‘(하와이안 타이Hawaiian Tie)’ 가게가 서 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한 흑인 앞에는 ‘하이엔파이(High End Pie)’ 푸드 트럭이 서 있고. 현대자동차를 찾는데 하와이 넥타이 가게는 뭐고, (맛이) 끝내주는 파이 트럭은 또 웬 말인가. 다 한국어 발음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다. 우리 귀에는 분명히 ‘현대’인데, 외국인들에게는 ‘히현~다이’, ‘효온다이’, ‘하이랜드~아이’ 등 아주 다양하게 들리나 보다. 현대는 왜 하필 현대라서 발음에 익숙지 않은 잠재고객들을 괴롭히는 걸까? ‘외국인 90%가 못하는 한국어 발음’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길래 살펴봤다. 보통 외국인들은 ㄱ, ㄷ, ㅂ, ㅈ으로 시작되는 한글 단어를 주로 ㅋ, ㅌ, ㅍ, ㅊ로 발음하다고 한다. 가방을 카방으로 발음하고, 도깨비가 토깨비가 되며, 주전자가 추전자가 되는 식이다. 한국어 교재에 발음 기호에 문제일 수 있다. 고유한 한국어 발음을 어쩔 수 없이 알파벳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자신의 모국어 발음과 호환이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발음자의 언어 습관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각국의 젊은이들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어 능력자들인 이들도 어려워하는 게 발음이다. 극장엘 가서 드디어 “오징어 주세요.”라고 주문할 수 있어 감격했다는 어느 일본인 패널의 말이다. 일본어는 ‘ㅗ’와 ‘ㅓ’의 구별이 잘 안 된다고 한다. 누가 봐도 한국어 능력자인 그에게 오징어는 여태 ‘오징오’였다. ‘오징오’보단 ‘어징어’가 더 웃기지 않나? 속으로 발음을 따라 하는데, 파키스탄 패널이 그런다. 자기는 그게 소고기란다. ‘서고기’라고도 할 때도 있지만 ‘소거기’라 정성 들여 발음하기도 한다고. 본의 아니게 소도, 그도 아주 위험해지는 순간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어에만 있는 표현법 몇 개만 알아보자. 시작은 ‘잘하면 지겠더라!’라는 표현이다. ‘잘하는데 어떻게 져?’ 하겠지만 우린 자주 이렇게 쓴다. 글자 그대로 ‘잘하면’이지만 ‘여차하면’이라는 뉘앙스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다. “저러다 잘하면 죽겠네...” 요즘은 좌석제이지만 예전에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엉거주춤 선 사람이 이렇게 물어왔다. “저, 여기 자리 있어요?” 자리가 있다는 소릴 들은 그 사람은 얼른 고개를 돌린다. 외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걸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꼽는단다. 그들은 주인 없는 빈자리를 떠올렸는지 모르지만 한국식 맥락은 이렇다. ‘이 자리에 지금은 가방만 덩그러니 보일지 모르겠지만 앉을 사람이 있어요.’ “헬스장 끊었어!”라는 표현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헬스를 그만뒀다고?” 되물어보면 한국인 친구는 “아니, 이제 헬스를 시작했다고!” 이런다. 끊다는 용어를 사전에서 배운 외국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게 하다(stop)’가 떠올랐겠지만 한국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제 마지막이다. 그럼 “과자라도 먹을래?” 하니까 한국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난 괜찮아” 한다. 말은 긍정인데 의미는 부정이다. “먹어볼래?” 하고 과자봉지를 내밀었더니 말은 “응, 그래” 하는데 과자를 가져가진 않고 있다. 그것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이다. ‘날 놀리는 건가? 장난치자는 건가?’ 아주 혼란스러울 거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런 말을 해주자. 우린 남편이 술을 다신 안 먹는다고 맹세를 하면 조용히 이런 말을 해주는 민족이야. “잘도 그러겠다.” 긍정[잘]에 긍정[그러겠다]을 더해도 잘 뒤에 붙은 도[부정] 하나를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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