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면 봉길리 바닷가에서 200m 떨어져 있는 작은 바위섬인 대왕암(大王岩)은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해중능인데 ‘대왕암’이라고 한다.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왕암은 용이 된 문무왕의 영혼이 깃든 곳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과 거의 대등하게 되었고 산업의 일부는 일본을 능가하고 있으니 지금쯤 문무왕은 대붕(大鵬)이 되셨을 것이다. 대붕은 한 번 날개짓을 하면 10만8000리를 날고 바닷속의 용을 잡아먹는다. 용으로 화하지 못하면 이무기, 이무기가 되지 못한 것은 뱀이다. 뱀에도 미치지 못하면 지렁이이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걸핏하면 토착 왜구 운운하면서 일본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우리를 아직 지렁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 1964년 10월 24일, 한국일보는 문화재청과 함께 신라오악학술조사 사업을 통해 문무왕릉에 대해 조사하다가 문무왕릉이 현재의 대왕암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정영호 교수를 포함한 3명의 학자들은 당시 대왕암까지 조각배를 타고 가서 대왕암 내부 웅덩이에 들어가 장대를 쑤셔 그 복판 바윗돌 밑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조사 성과를 토대로 조사단이 그린 모식도에는 바위 밑에 유골상자와 부장품을 담은 관 같은 석함이 그려져 있다. 즉 대왕암 내부 복판 바닥에는 관이나 유골 상자를 안치하기 위한 홈이 있고, 그 위를 거대한 바위로 덮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대왕암은 물속에 유골을 모신 수중릉이 된다. 그러나 2001년 재조사에서 바위 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2001년 KBS 역사스페셜 팀이 학자들과 함께 최초로 대왕암을 직접 탐사했다. 조사단은 대왕암 십자 수로의 끝을 모래주머니로 막은 후 양수기로 물을 빼내어 대왕암 한가운데에 있는 바윗돌인 복개석을 비파괴검사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복개석은 석관 뚜껑이나 덮개돌이 아니었다. 그냥 약 20t 정도 되는 거대한 바윗돌이었고, 복개석 아래에는 부장품은커녕 유골상자나 사리함 등을 묻은 공간은 물론 그런 흔적조차 없었다. 바위가 놓인 곳은 부드러운 흙층이나 모래층이 아니라 주변 암초의 일부이자 단단한 암석층인지라 도저히 파내려야 파낼 수가 없는 구조였던 것. 결론적으로 바위 안이나 바위 밑에 부장품이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신라오악조사단이 왜 바위 밑에 유골상자와 부장품을 둔 공간이 있었다고 추측했을까? 바위 아래가 절리층인지라 쩍쩍 갈라진 틈새가 많은 암석층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에는 비파괴검사 장비 등 최신장비들이 없어 막대기로 쑤셔가며 조사했는데, 하필이면 막대기에 바닥 틈새 공간이 잡혔기 때문에 이 공간에 유골상자와 부장품을 모셨을 것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한편 2001년 조사 당시 학자들의 의견은, 현재의 복개석인 그 바윗돌은 대왕암에서 자연적으로 떨어져 틈새에 끼어있었을 텐데, 그 바윗돌을 석공들이 밀어 꺼내어 대왕암 중심에 갖다놓았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였다. 게다가 2001년 조사 때 대왕암의 십자형 수로와 대왕암 안쪽을 인공적으로 깎아서 다듬은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바닷물이 동쪽 수로로 들어와 서쪽 수로로 빠져나가는데,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서쪽 수로를 깎아서 동쪽 수로보다 더 낮게 만든 흔적이 나왔다. 대왕암의 안쪽도 툭 튀어나온 부위를 정으로 깬 흔적이 있었다. 유골이나 부장품을 안장하지 않았다면 왜 신라 왕실은 석공들을 시켜 대왕암을 다듬고 정리하는 수고를 했는지 의문이 남는데, 문무왕의 유골을 뿌린 산골처인 대왕암을 아예 문무왕을 기리는 성지로 만들고자 바닷물이 잘 드나들고 흉한 부분이 없도록 외양을 다듬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즉, 문무왕을 제대로 추모할 수 있는 허묘(墟墓)를 해중릉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왕암에 문무왕의 유골이 안장되지는 않았더라도, 문무왕이 살아 생전에 관계가 깊은 장소이고 신라 왕실에서 대왕암을 추모공간으로 삼고자 작업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해변에는 횟집이 어지럽고 ‘방생고기 팝니다’, ‘굿당 대여합니다’ 등의 안내판이 눈이 뜨인다. 찾는 이의 눈에 거슬리고, 문무대왕께서도 불편해 하실 것 같다. 경주시나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정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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