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뉴코리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송재용 단장이 기자에게 전화했다.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는 것이었다.
찰턴 헤스턴 주연의 1968년 영화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 / 랄프넬슨 감독)’다. 송재용 단장이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유럽 사회의 오랜 전통을 되새기고 우리 사회에도 접목시키고 싶은 바람에서다.
영화는 2차세계대전이 끝나기 한 해 전인 1944년 벨기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내용은 벨기에에서 순회공연 중인 미국 오케스트라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면서 벌어지는 사연을 다룬 것이다.
유명 지휘자인 라이오넬 에반스(찰턴 헤스턴 분)와 음악을 좋아하는 독일 장군 쉴러, 독일군 대령 안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신경전이 이 영화의 백미다.
포로를 사살하려는 안트 대령의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 지휘자 에반스를 알아본 쉴러 장군은 자신을 위해 연주하는 조건으로 에반스 이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살려준다. 그러나 안트 대령은 포로는 무조건 사살해야 한다며 쉴러 장군을 상부에 보고하는가 하면 수시로 오케스트라 사살 의지를 드러내며 쉴러 장군을 압박한다.
연주를 끝내면 곧바로 처형될 것을 아는 에반스는 최대한 연주를 하지 않고 연습만 하며 시간을 끌어보려 하지만 이런 속을 모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쉴러 장군에게 잘 보여 목숨을 구제받고자 속히 연주를 하자며 에반스를 독촉한다. 이 사이에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의 빅터 라이스의 아내이자 에반스의 옛 연인이었던 애니벨 라이스가 끼어 세 남자 사이를 오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기서 송재용 단장이 주목한 점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가 벨기에 각 군을 순회하며 공연을 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쉴러 장군과 독일군 대위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적대국 지휘자를 알아본 장군과 대위는 스스럼없이 자신이 팬임을 자처하며 음반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심지어 영화의 막바지에는 명령이나 명예보다 음악을 선택한 쉴러 장군의 용단이 이 영화의 대미를 뜨겁게 장식한다.
아울러 극 중 오케스트라 단원 사이에 숨은 미군 중위가 트럼본을 분다는 점이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 모습에서 의심 갈 만한 미군 중위를 꿰뚫어 본 안트 대령 역시 음악적 소양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음악을 기본적으로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는 서구의 교육 의식이 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 송재용 감독의 눈길을 끈 것이다. 여기에 뉴코리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낙도와 오지는 물론 해병대가 주둔한 포항과 백령도까지 공연한 송재용 감독이 각별하게 볼 만한 대목이 차고 넘치는 셈이다.
송재용 감독은 최근 그 자신 오랜 기간 고심해서 재현한 ‘대한제국 황실양악대’ 정기공연을 서울시 문화사업으로 신청했으나 대상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공연은 서울시와 종로구가 자부심을 가지고 지원하던 문화사업으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각별했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중단되었지만 양악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서울시장이 바뀌어 정치적 역풍을 맞았다’는 탄식까지 나올 만큼 서운함이 컸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음악이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정치에 휘둘린다면 그런 정치와 사회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더구나 송재용 감독은 학교에서 가곡이 사라지고 음악 교육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현실에 대해 늘 개탄해왔다. 그런 그에게 카운터포인트는 음악의 가치를 권하고 고양하는 가장 강력한 인생 영화이다.
제목부터 음악 용어 ‘대위법’인 이 영화는 음악영화답게 명품 교향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게 펼쳐진다. 베토벤 5번 1악장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이 영화는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브람스 1번 4악장, 바그너 탄호이저가 실제로 영화 속에서 연주된다. 주연인 찰턴 헤스턴은 이 영화를 위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무려 6개월간 출근하며 지휘 공부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열정이 명작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