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 날아오르다
장옥관
경주 남산 달밤에 가오리들이 날아다닌다
아닌 밤중에 웬 가오리라니
뒤틀리고 꼬여 자라는 것이 남산 소나무들이어서
그 나무들 무릎뼈 펴 둥싯, 만월이다
그럴 즈음은 잡티 하나 없는 고요의 대낮이 되어서는 꽃, 새, 바위의 내부가 훤히 다 들여다보이고 당신은 고요히 자신의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때 귀 먹먹하고 숨 갑갑하다면 남산 일대가
바다로 바뀐 탓일 게다
항아리에 차오르는 달빛이 봉우리까지 담겨들면
산꼭대기에 납작 엎드려 있던 삼층석탑 옥개석이 주욱, 지느러미 펼치면서 저런, 저런 소리치며 등짝 검은 가오리 솟구친다
무겁게 어둠 눌러 덮은 오랜 자국이 저 희디흰 배때기여서
그 빛은 참 아뜩한 기쁨이 아닐 수 없겠다
달밤에 천 마리 가오리들이 날아다닌다
골짜기마다 코 떨어지고 목 사라진 돌부처
앉음새 고쳐앉은 몸에
금강소나무 같은 굵은 팔뚝이 툭, 툭 불거진다
천 마리 가오리들이 날아다니는 남산의 달밤
집이 십만 호를 넘었고, 탑이 기러기처럼 많았다는 서라벌을 기억할 것이다. 그 탑들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이 경주 남산이다.
시간은 만월이 둥싯 떠올라 “꽃, 새, 바위의 내부가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밤, 달빛 그 신성한 빛으로 인해 낮동안 숨죽였던 돌들이 들썩이고, 뒤틀리고 꼬여 자라는 남산 소나무들이 무릎뼈를 편다. 반면 내 몸은 그들의 상승과는 반대로 “고요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귀 먹먹하고 숨 갑갑”해지면서 경주 남산의 달밤이 일순 바다가 되는 순간, “산꼭대기에 납작 엎드려 있던 삼층석탑 옥개석이 주욱, 지느러미 펼치면서 저런, 저런 소리치며 등짝 검은 가오리”로 솟구쳐 나른다.
이런 역동적인 상상력은 옥개석의 모양이 가오리를 닮았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사실 가오리와 가자미는 해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엎드리거나 천천히 움직이는 어류이다. 가라앉아 있음과 날아다님, 현실과 환상이 이렇게 역동적으로 만나 돌올한 시가 되었다. 시인은 여기서도 “무겁게 어둠 눌러 덮은 오랜 자국이 저 희디흰 배때기”라는 역발상을 보여준다. “희디흰 배때기”는 그대로 옥개석의 노출되지 않은 부분이면서 희게 쌓이는 설레는 시간들을 말한다. 천년의 시간 동안 무거운 돌을 덮어쓰고 비와 바람을 맞았던 몸이 그 설레는 첫 시간을 살아 가오리로 날아다니니 “그 빛은 참 아뜩한 기쁨”이 된다.
놀라워라. 남산은 이제 “달밤에 천 마리 가오리들이 날아다”니는 바다, 아니 바다와 산이 결합된 원초적 시공간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천 마리’는 말할 것도 없이 수도 없이 많다는 속성을 지닌다. 이를 앞서 이야기한 “탑이 기러기처럼 많았다”는 기록과 결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달이 둥싯 떠오른 밤, 번성했던 왕조의 시간에 상상의 옷자락을 갖다 대어 그 순수한 시간을 재현한다. 이는 마지막 연, “코 떨어지고 목 사라진 돌부처/앉음새 고쳐앉은 몸에/금강소나무 같은 굵은 팔뚝이 툭, 툭 불거진다”에서 보이는 회복과 재생의 시간과도 맥을 같이 함은 물론이다. 감각이 발효되고 언어가 숙성된 한 편의 시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