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간혹 나이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타국에 살다 보면 자기 객관화가 좀 어렵다. 즉 내가 지금 몇 살인지 가늠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자기 객관화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나와 주변의 관계나 연결고리가 한국보다 많이 약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만큼 정서적 유대, 관계 중심의 일상, 더불어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사고를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오죽하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나와 주변의 관계를 중심으로 벽이 없고 격이 없이 다 잘 나누면서 공유하고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떠하고, 어떠해야 한다라는 생각들은 나와 주변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어 있는가에 큰 영향을 받고 기준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타인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거나 나의 정체성을 찾을 때가 많다. 그러나 서구 사람들은 내 중심의 영역에서 타인을 허락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관계의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살면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 어렵다. 여하튼 타국에서 살고있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나이를 대충 잊고 사는지 혹은 무시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항상 활력이 있고 열심히 일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벌써 은퇴를 해도 오래전에 해야 할 연세이지만 현역에서 혹은 은퇴를 해도 동일한 분야에서 꾸준히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을 더 벌어야 하는 현실적 요구가 당사자에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으로서는 아직 몸을 움직이고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란 나이를 먹게 되고, 인간의 신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이란 것은 분명 있다. 특별히 부모로부터 잘 물려받은 건강 체질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을 한없이 이길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래서 젊을 때 거침없이 덤벼들었던 일이라던지, 오로지 열정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개인의 성공신화를 만들어가는 경우를 타국에서 인생 후반을 맞는 사람들에게는 좀 고민을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세월을 잊고 살고 있는 타국땅 동포들이 좀 편하고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개인의 자아를 세월에 빼앗기지 않으면서 젊은 마음과 기백으로 살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이런 관점에서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한국에 관련된 -something with Korea’일 것이다. 해외에 살면서 모국에 대해서 당사자만큼 잘 알고 있는 외국 친구들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 무엇이든 내 나라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좀 편하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즉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 관련된 비즈니스를 해외에서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게 당사자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었다. 그런데 요즘 추세를 보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한국의 국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나는 통계를 잘 신뢰하는 편이 아니지만, 최근에 발표되는 여러가지 자료들을 보면 한국의 뻗어가는 기상은 실로 대단하다. 무엇보다 현지 사람들이 표하는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예를 들면 지난주 아내와 함께 마켓에 갔는데, 아내를 한국 사람임을 알아본 영국인이 일부러 다가와서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한식 레스토랑을 두 곳을 경영하는 내게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길을 지나면서 그냥 들어 오는 현지인들이 종종 있다.  이유는 단 하나, 한국말로 한국 사람과 한 두 마디라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국 생활 26년 차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워 본적이 처음이다. 좀 과장해서 지금 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논에 물 들어 왔을 때 모를 심어라’ 혹은 ‘물 들어 왔을 때 노를 저어라’ 라는 말이 있다. 나이를 잊고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청년의 마음으로 신나게 할 수 있는 ‘한국에 관련된 일-SOMETHING WITH KOREA’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는 후편에서 한 번 더, 동일한 주제로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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