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의 어느 시골마을에 텔레비전 1대가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놈은 완전 중고 텔레비전이었다. 가금씩 화면이 안 나올 때면 텔레비전의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두들겨줘야만 화면이 제자리를 잡곤 했다. 비록 그만큼 낡은 텔레비전이었지만 우리집 안방은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냐면 그 동네에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1대밖에 없었으니까! 그 통에 꼬마인 나는 동네에서 왕초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밉보였다가는 테레비 근처에도 올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 꼬마는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속에서 많은 것을 보며 자랐고 너무나 당연히 고전 영화를 멋모르게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영화가 주는 감동을 과연 느끼기나 했을까만 그중에 한정치산자인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와 광대인 잠파노(안소니 퀸)의 사랑을 그린 1957년작 흑백영화 ‘La Strada[The Road]’와 음악을 사랑하는 말괄량이 수녀 ‘마리아’와 ‘포트람 대령’의 사랑이야기 1965년작으로 ‘The sound of music’은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수십 번을 보아도 새롭고 신선한 맛을 안 느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두 편보다 더 깊이 가슴을 울린 작품이 있으니 1990년작 ‘시네마 천국’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제6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영화이다.
영화는 지중해 바닷가 햇빛에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모습이 비추어지며 시작되고, 알프레도 아저씨의 부고 소식을 듣고 3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중년의 멋진 토토가 흘러간 옛 추억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꼬맹이 토토는 어린 시절 영화관 영사실 기사인 알프레도 아저씨와 좁은 영사실 안에서 함께 지내며 아저씨의 모든 것을 따라 하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꼬마의 눈에는 아저씨가 우상이고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토토의 아버지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군대에 나갔지만 돌아오지 못했고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못 느끼고 자라는 꼬마 토토는 알프레도 아저씨를 아버지 이상으로 의지하며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재미 있는 게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 일에 빠져드는 토토에게 이 길은 꿈도 없고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일의 연속이며 항상 혼자이어야 하기에 토토에게는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고 만류한다.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듯이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있었겠는가.
어느 날 영사실의 화재로 실명이 된 아저씨를 대신하여 청년 토토가 영사실의 기사가 되고 엘레나라는 아가씨와도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토토는 엘레니와의 헤어짐에 상심하여 고향을 떠난다.
시간은 흘러 성공한 감독의 모습으로 나타난 멋진 중년의 토토! 알프레도 아저씨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영화필름을 돌려보는데 그 중에는 알프레도 아저씨가 모아둔 영화속 키스 씬들이 들어 있다. 그 키스 씬들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토토의 애틋한 모습과 배경에 깔리는 아름답고도 슬픈 멜로디의 OST가 ‘Love Theme’다. 그 마지막 장면을 ‘love theme’와 함께 들으면서 울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인생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그 누군가가 말했다. 한 번쯤 아프지 않은 사랑을 안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그 어떤 것이든!
이 한편의 감동스런 영화를 알게 되어 나의 심성에는 따스함이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무언가 열정을 가지고 자기 일에 매달리는 토토가 소원하던 일을 이루는 모습은 예전이나 현재나 미래를 살아가는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가끔씩 MZ세대의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열정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작은 행복이 당신을 기다려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박은복 : IT전문가로 ㈜네이블 커뮤니케이션즈 상무이사로 근무 중이다. 성동구 금성교회에서 안수집사로 봉사중이며 각별한 봉사심으로 성동구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재경경주고33회 동기회 부회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