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는 건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만큼 흔하다. 하지만 카페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뜨겁고 찬 음료를 홀짝이는 건 또 아니다. 흔히 “커피 한 잔하고 갈까?” 하는 제안은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뭔가 심각하게 중요한 이야기 좀 하자’라는 의미다. 커피는 그런 상징성을 가진 사회적 장치다. 그것만큼 익숙한 광경 중 하나가 악수하거나 서로 인사하는 모습 아닐까 싶다. 모든 만남의 시작이나 발전은 악수나 웃음을 머금은 가벼운 목례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서로의 손을 거머쥔다는 의미의 악수(握手)는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인사법이다. 그럼 왜 하필 손을 잡았을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일단 잡아보면 안다. 손으로 전달되는 상대의 온기는 많은 걸 이야기해 주니까. 근데 왜 우린 악수할 때 서로 손을 흔들어댈까? 알다시피 영어로 악수는 글자 그대로 손을 흔들기(shaking hands)다. 우리에게 악수는 오랜만에 잡아보는 상대 손일수록 꽉 잡는 게 일반적이다. 그간 잘 있었어? 요즘 얼굴 좋네? 이 모든 게 있는 힘껏 잡아보는 그 악력에 다 녹아있다. 서구에서의 악수는 손을 서로 흔들어 보임으로써 ‘나는 무기를 숨기고 있지 않다, 나는 당신에게 우호적이다’ 등의 메시지를 전하는 풍습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던 게 사회가 점점 문명화되고 또 무기를 소매 안에 숨기는(?) 등의 폭력적인 상황이 줄어들면서 우정과 존경의 몸짓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나만 신기한가? 손을 서너 번 흔드는 행위가 두 사람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되고 신뢰감과 친숙함을 구축된다는 게 말이다. 건배(乾杯)도 아마 그런 문화적 맥락을 가진 것으로 안다. 술잔을 세게 부딪치다 보면 내 술이 상대의 잔에 들어가게 되고 같은 방식으로 넘어오면서 섞이게 된다. 다 마시기에도 아까운 술인데 왜 술을 낭비하냐고? 건배하는 동안 잔을 부딪치는 관행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 왔고 그 기원과 의미에 대한 많은 이론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서로의 잔을 부딪치는 행위로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앞서 말한 손을 힘껏 흔드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소주잔보다 생맥주잔을 들고 있을 때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더 커지는 것도 독약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겠다.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아보려고 우리는 상대의 손을 마구 흔들어대고 내 잔의 술을 상대 잔에 뿌렸던 모양이다. 좀 어이가 없지만 오늘날의 정치한 문화는 다 그렇게 진행되어 온 것들이다. 지금 내 손에 사진 한 장이 들려 있다. 신문에서 오려낸 건데, 튀르키예의 한 아버지가 죽은 딸의 손을 꼭 쥐고 있는 사진이다. 알다시피 2022년 터키에서 국호(國號)를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의미의 튀르키예로 바꾸었다. 지금 그곳은 지진이 흔들고 간, 가장 힘든 시간을 겪어내고 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에 따르면 지진이 난 지 1주일 만에 사망자만 무려 3만1643명이라고 한다. 사진 속 무너진 건물더미 밑으로 침대가 살짝 보인다. 잠자듯 누워 있는 딸의 시간은 거기서 멈추었고 죽은 소녀 곁에 있는 아빠에게는 통한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삶과 죽음이 만들어낸 이 기묘한 대조가 낯설다. 체념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의 아버지는 죽은 딸의 손을 놓지 못한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슬픔만이 온전히 놓여있지는 않다. 규모 7.8의 지진이 튀르키예를 할퀴고 있던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마구 흔들리는 인큐베이터를 온몸으로 지켜내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지진으로부터 집중치료실에 있던 신생아들을 지켜낸 것도 간호사의 위대한 두 손이었다. 어쩌면 악수는 손으로만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있는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텐트에는 현지인들이 남긴 글로 빼곡했다. 누가 봐도 베껴서 쓴 것 같은 ‘형제 나라’, ‘고마워 형’ 이 보인다. 그 옆에는 ‘당신들은 곧 행복해질 겁니다. 힘내세요, 튀르키예!’라고도 쓰여 있다. 생존자를 구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이들에게 내민 그들의 따뜻한 손들이다. 손으로 쓰고 있는 문화인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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