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영어였다. 수학은 곧잘 하고, 재밌어했지만 영어는 일찍 포기했다. 영어에도 수학과 같은 법칙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단어를 암기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만 집중하고 공부하는 게으름뱅이인 나에게 영어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가 그나마 점수 같은 점수를 줬을 뿐, 고입시험, 대입 시험에 영어는 포기한 과목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누굴 닮겠는가, 엄마를 닮지! 나와 같은 꾀에 빠져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낼까 걱정이 앞섰다. 임신하고 영어(교육)에 관한 각종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고 강의, 강연을 쫓아다녔다. 영어를 잘하는 엄마들을 만나면 그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교육할 생각인지 묻고 다녔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바로 여자에서 엄마로, 아줌마의 삶으로 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학 시간에는 손을 들고 자진해서 문제를 풀기 위해 나가던 아이가 영어 시간에는 선생님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기 영어 교육을 한다고 아이를 타국에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나둘 효과가 좋은 방법들, 이미 많은 아이가 익힌 방법들을 찾아냈다. 이제는 이 방법을 내가,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걸러내야 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영어 교육의 기준이 생겼다. 스트레스는 최소한, 영어를 자연스럽게, 쉽게 익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줌마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영어는 교육이 아니라 언어로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학교 영어 성적이 좋은 사람들도 다시 어학원을 다니고, 높은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 또 토익 학원에 다니는 걸 보면서 이것은 문제라고 인지했다. 아줌마가 원하는 영어는 회화였다. 그러나 회화학원도 다녀보고 문법 책도 공부해 봤지만, 그 과정이 쉽지도 않았고 끝까지 완독도 못 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었다. 엄마표 영어라 불리는 많은 방법도 알게 되었다. 많은 선배 엄마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끝에 엄마가 찾은 방법들로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전파하는 많은 방법이 존재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알맞은 수준의 책을 컨택하는 눈이 있어야 하거나, 엄마가 영어 그림책이나 책을 꾸준히 읽어줘야 했다. 아이도 엄마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던 내게 이 방법은 엄마인 내가 꾸준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나는 게으른 엄마니까!) 또 어떤 방법들은 말만 엄마표 영어지, 집에서 하는 영어학원식 교육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강한 압박감으로 아이를 몰아붙이는 방법들은 거부감이 들었다. (엄마도 이런데, 당하는 아이들은 오죽할까!) 5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지났지만 결론은 없었다. 그 사이에 아줌마는 아이들이 모르는 것에 대한 도전에 망설이지 않기를 바라며 아줌마도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영어 강의를 완강하는 경험을 했고, 처음으로 암기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입에서 영어가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학교를 다녀도 영어를 익히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강의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완강을 했어도 여전히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 방법은,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게 또 실망한 순간, 우연히 듣게 된 강연이 있었다. 엄마표 영어로, 엄마는 영어를 못하지만 아이들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그 방법을 책으로 쓰고, 커리큘럼을 만들었으며 그 방법을 전하다보니 그 방법을 통해 다른 아이들이 효과를 보았고, 그 효과를 본 아이들의 엄마가 이 방법을 다시 전하고 있었다. 유레카! 드디어 내가 찾던 방법을 알게 되었다.아줌마는 중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영어와 점점 멀어지다가 엄마가 되어 다시금 영어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영어 학원을 석 달도 못 다녔던 사람이 영어 강의를 완강하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되었고, 성경을 필사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신약은 영어로 필사를 하게 되면서, 영어 문장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영어를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미드 프렌즈를 필사와 쉐도잉을 함께 하면서 영어가 들리게 되었다. 영어를 좀 알게 되는데, 이만큼 오는데 삼십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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