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은 민중의 피로 자유와 인권을 쟁취한 측면이 조금 약하다. 그 탓에 권리의식은 강하나 책임과 의무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당연히 건전한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뒤처진다. 나아가 규범의 수평화가 지연되며 잘게 쪼개진 섹터별로 집단이기주의가 창궐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각 기관별로 내거는 분리와 독립의 과다한 주장이다. 분리와 독립만 하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공동체의 선이 이루어질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은 그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국 그 주장은 우리 경주시민을 포함한 전체 국민에 대한 기만으로 끝나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하에서 취임 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재판의 독립’,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해왔다. 그의 입에서는 아마 단 한번도 국민의 처절한 일념인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계 법학계에서는, 사법의 독립을 이처럼 과도하게 주장하면 그 부작용으로 재판처리의 지연이나 법관의 부정이 증가한다고 하며 많은 실증적 예를 제시한다. ‘김명수 사법부’에서 역시 예외 없이, 사건처리가 엄청나게 지연된 것이 통계상으로 확실하게 제시되었다. 장기미제 사건이 무려 민사는 3배, 형사는 2배로 늘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彦)도 있다. 김명수 사법부는 국민의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해방 후 최악의 사법부이다. 그런데 사법부의 독립 주장을 본받아 한 때는 검찰의 중립 혹은 검찰의 독립이 주장되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경찰의 독립’ 주장이 큰 화제가 되었다. 이런 검찰, 경찰의 독립 주장들 역시 ‘공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을 바라는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을 도외시한 근시안적 주장이다. 절대 독립만으로는 국민의 소망이 실현될 수 없다. 독립과 함께 책임(accountability)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는 세계 법학계의 주장이 옳음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과도한 독립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당정분리’라는 개념이다. 당을 대통령실에서 완전분리하면 아름다운 당내민주주의가 지켜지고, 만약에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당무에 관여하면 이 ‘당무개입’은 극악한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 정권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운위된다. 그러나 이 ‘당정분리’와 그 위에 붙은 관념의 뚜껑은 실상 어디에도 근거를 잘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국민의힘 당헌 제8조에서는 대통령과 당이 하나의 주체가 되어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였다. 제1야당이자 다수당이며 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105조 제2, 3, 4항에서는 대통령의 당무전반에 대한 개입의 길을 국힘당보다 일부러 더 열어놓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정일체’를 강하게 부르짖기도 했는데, 지금 이런 사실은 의도적으로 가려지고 있다.
대통령의 ‘당무개입’이 민주주의 후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대부분의 언론과 식자들은 과연 이 여, 야당의 당헌을 한 번이라도 자세히 검토했을까? 희한한 일이다. 그들 주장에 어떤 논거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당내민주주의’를 저해한다며 일방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한다. 그런데 ‘당정분리’가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 발휘에 의한 ‘당무개입’이 규범적으로 옳은 것이며, 또 상식에도 부합하고, 한편 다음의 헌법적 해석과도 궤를 같이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는 동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그는 따라서 ‘사상의 자유’니 ‘언론의 자유’와 같은 헌법적 기본권을 가진다. 좀 더 초점을 좁혀 말하자면, 정당법이나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는 ‘폭행, 협박’ 혹은 ‘위계, 사술’등의 행위금지유형에 해당되지 않는 한 당대표 경선에 관여하는 것이 허용되고, 또 그 기본권 보장의 범위에서 일반적 당무에 간섭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렇게 헌법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우리 헌법이나 관련법률의 해석, 그리고 여, 야당 당헌의 해석을 통하여 어디에도 무조건적인 대통령의 ‘당무개입’ 금지의 근거는 없다. 우리 사회를 망령(妄靈)처럼 떠돌고 있음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장은 오히려 대통령의 정치적 무책임성을 부추길 위험성이 있고, 악용될 우려가 있다. 대통령이 막중한 책임을 방기하고 제 좋은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기운다. 김명수 사법부에서의 헛된 ‘사법부의 독립’ 주장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