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비록 학문 분야가 아닌 평화상이지만 그래도 노벨상은 노벨상이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평생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여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결과물이다. 문학상 분야에도 시인과 소설가 몇 사람이 매년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수상 소식은 아직 없다.
그러는 중 2022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 수학과 허준이(June E. Huh)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여겨지는 필즈 상(Fields Medal)을 수상하여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가 이 상을 수상하였다는 것은 조만간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자도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분야별로 몇 명은 노벨상 수상에 근접해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한다.
한편,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1949년 노벨 물리학상 이래 모두 29명의 노벨상 수상자(평화상 1명 포함)가 배출되었고 필즈 상도 이미 3명이 수상하였다. 일본의 노벨상은 문학, 물리, 화학, 의학 등 분야가 다양하고 기초 과학자들이 수상을 많이 했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 학문 수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SKY대와 의과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가지고 학교의 수준을 가늠기도 한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어느 분야의 고시(변호사, 행정, 외무, 회계사 등) 합격생이 많이 배출되었는지를 가지고 대학 서열이 매겨진다. 이러한 것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보리고개’를 한탄하면서 지지리도 못살았던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넉넉해져 선진국 사람들 못지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국내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국내 혹은 외국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을 계속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러한 양상은 벌써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반세기가 넘었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 초부터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과학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여 194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니 20년이 되지 않아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턱없이 늦다. 왜 그럴까.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일본인들 특유의 장인정신이 합쳐진 것인가. 아니면 일본과 한국의 교육제도의 차이 혹은 이들 모두가 동시에 작용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학술 연구비 지원을 적지 않게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장기 투자와 지원이 아닌 단발성에 그치고 있고, 또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른 한편,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일단 지원을 받은 후에는 설렁설렁 연구하는 흉내만 내고 실질적인 성과는 지지부진한 부분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허준이 교수가 한국의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교중퇴를 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대학 진학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허 교수가 다녔던 초·중·고 만이 아니고 우리나라 각급 학교의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학생들을 어릴 때부터 너무 일정한 틀 안에 가두어 놓고 그 안에서 경쟁을 시키다 보니 당장 성적 올리기에 급급하고 일류대학 진학에 매달리다 보니 개개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방식 함양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대회에 나가서 늘 좋은 성적을 올려 상위권을 다툰다. 이 대회도 스포츠처럼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수학/과학 선수들을 육성하기에 급급한 소위 엘리트 위주로 보인다. 과거 이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올린 학생들이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 전반적으로 서구의 학생들과는 엄청난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니 제도권 내에서 과거 그렇게 공부 잘하던 학생들 중에 노벨상 혹은 필즈상 수상자가 아직 배출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된다.
외국 유학을 가서도 어릴 때 그렇게 잘하던 수학, 물리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신히 박사학위라도 받아 오면 다행이다. 어릴 때부터 문제를 푸는 기계로 훈련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과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기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공부시키지 말고 차라리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거나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고 내버려 두는 것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허 교수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인이 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만큼 체면유지를 위해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조만간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