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경주에 살면서 사계절을 맞이하는 풍경은 언제나 특별하다. 동네 논 풍경을 벗어나면 경주의 계절을 느끼는 곳에는 언제나 문화재가, 역사가 함께 있다. 십 년을 넘게 경주에 살았는데도 아직 교과와 책을 벗어나 경주의 멋을 깨우친 것이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작가 린다 수 박의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린다 수 박은 이민 1.5세대로 미국에서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한국인으로서 아이들에게 뿌리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 결국엔 작가가 되었다. <사금파리 한 조각>, <내 이름이 쿄코였을 때>, <연날리기>, <널뛰기> 등과 같은 작품을 썼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도자기공의 이야기, 일제 강점기 창씨 계명, 그리고 전통 놀이를 소재로 작품을 써서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고 아이들의 미국 친구들에게까지 그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이민 세대의 후손으로서 아이들이 미국에서 자존감을 높이고 교우관계는 물론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훌륭한 방식이었다. 조금 시각을 바꿔보자. 우리나라는 작은 크기이지만 팔도로 나뉘어 있으며 지역마다 특성이 강해 언어와 음식이 강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정작 그 지역의 특화된 것들을 생각해보면 지역특산품 몇 개 기억나는 정도다. 왜 그럴까?! 교과서에 의한 교과서 수업만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일괄적이다. 통상적인 개념을 교육한다. 그래서 전국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대학에서 모여도 비슷하다. 자신의 고향에 대해 특별한 것을 이야기하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그나마 특성이 강한 제주도 출신인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조금씩 그 변화를 느낀다. 아이들이 학교 밖 문화에 대해 접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내권 아이들, 다른 지역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선행수업 이야기뿐이다. 모든 교육이 입시 교육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난리다. 그러나 진짜 난리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그걸 또 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현실이다. 글로벌 시대다. 굳이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전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을 경험하는 것을 다루는데 놀라운 점은 그 친구들은 자신의 나라, 특히 고향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굉장히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반문하는가.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자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단순하다. 어디 출신이냐고, 그게 끝이다. 익숙지 않은 지명이면 거기가 어디냐 정도일 뿐 그 이상의 질문이 없다. 질문이 없는 이유는 자신도 고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볼 생각도 않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왜? 우리는 고향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것은 교과과정에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다뤘으면 바라지만, 엄마는 급하다.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건 계속 건의하고, 지금 당장 우리 아이들, 동네 아이들은 어쩔 것인가! 린다 수 박처럼 직접 작가가 될 능력이 없다면 다른 방식을 구하면 되지 않을까! 세상 참 좋아졌다. 어딜 가나 해설사들이 존재한다. 경주에는 정말 엄청난 것들이 많고 알아야 할 것, 알고 싶은 것들도 너무나 많다. 사전 조사를 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검색한 뒤, 해설사들을 만나면 아는 것만큼 보이고 질문할 것도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학창 시절 아주 뛰어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유학도 드물었던 그 시기에 그 친구는 외국에서 한 달이나 지내고 왔다. 훌륭한 부모님을 두고 공부도 잘하고 언어 능력도 뛰어나고 교우관계도 원만한 친구여서, 엄친아의 표본인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외국에 다녀온 소감이 우리의 기대와 달랐다. 심각한 표정으로 외국에 나가 섬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만끽하고 오리라 다짐했던 친구는 내가 친구들에게 제주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달 내내 각국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정작 많은 시간 그들과 이야기한 것은 서로의 고국, 고향의 이야기였다고, 프로젝트 진행을 할 때는 가장 진취적으로 진행했던 친구가 막상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일상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지내고 왔다고 고백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났는데 이제 엄마가 되고 보니 아주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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