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과 나는 공포 영화를 안 본다. 아니 못 본다. 무섭기 때문이다. 갑자기 뭔가가 툭 하고 튀어나오질 않나, 반전을 암시하는 듯한 전화벨 소리는 왜 그리 우렁찬 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고 있는 주인공을 감싼 배경 음악이 스산한 것도 불편하고, 아무튼 공포영화는 안 본다. 그랬던 우리가 어느 소녀의 춤 동영상을 보며 낄낄대고 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메건(M3GAN, 2023)〉이라는 이름의 로봇이 추는 춤인데, 지금 인터넷상에서 화제다. 〈겟아웃〉,〈23 아이덴티티〉 같은 히트작으로 유명한 미국 공포 영화의 명가(名家) 블럼 하우스의 이번 신작은 공포영화 초짜인 우리가 보기에도 좀 어설펐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읜 아홉 살짜리 소녀를 위해 이모가 인공지능 로봇을 친구로 만들어 주는 걸로 영화는 시작된다. 무엇보다 저예산 티가 팍팍 났고 등장인물의 연기도 그저 그래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그다음 날까지 아들이랑 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메건이 춤추는 장면이다. 왜 하필 그 장면일까. 신나게 춤은 추는데 얼굴은 표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는, 그 콘트라스트(대조)의 불편함이랄까? 춤을 추고 있는 몸의 감정은 쉽게 읽히는데 외려 얼굴은 그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다면 그 자체로 공포다. 감정의 인간보다 로봇이라는 설정이 그래서 영화를 더욱 무섭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그렇지, 120cm짜리 아이 크기의 로봇이 무서우면 또 얼마나 무섭겠나 할 수도 있다. 주인공 로봇은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큰 머리를 하고 있다. 젖살도 안 빠진, 진짜 아홉 살짜리 귀여운 얼굴인데도 왜 우리는 공포심을 느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인간은 타인의 얼굴을 살피는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얼굴 표정을 인식하고 해석하도록 발전해 왔다. 따라서 표정은 인간 의사소통의 보편적인 측면이며 특정한 얼굴 표정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미소가 행복의 표시로 인식되고, 찌푸린 얼굴은 슬픔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 얼굴에는 43개의 근육이 있다고 한다. 이 근육의 움직임으로 우아한 미소를 짓고, 인상도 쓰며, 한쪽 눈썹만 올려 시큰둥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얼굴은 약 1만가지 이상의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표정의 강도, 미묘함, 안면 해부학과 근육 조절의 개인차 등등으로 볼 때 표정은 더욱더 다양해지는데, 이걸 인공지능이 무슨 수로 모방할 수 있으랴!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거다.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사람과 흡사해질수록 로봇에 대한 호감도는 증가하지만,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오히려 섬뜩함과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딱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인조인간의 얼굴이 바로 이런 경우다. 얼굴 표정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타고 난다. 또한 문화를 초월해서 사람들은 특정 얼굴 표정과 관련된 감정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얼굴 표정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감정 모방’이라고 불러도 좋고 ‘감정 전염’이라고 해도 좋은 이 능력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나아가 사회적 상호 작용과 관계 구축에 핵심이 된다. 즉 인간은 그 다양한 표정으로 인해 비로소 인간인 셈이다. 이런 우리가 왜 마스크를 벗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코로나로 3년이 흐른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데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그 이유로 사스나 메르스 같은 감염병 사태로 마스크 착용이 습관이 되었고, 마스크는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로 받아들여지는 문화이며, 미세먼지 등 공해에 실제 마스크가 효과가 있음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습관이 제 2의 천성이 될 수는 없다. 일본인들은 마스크를 안 쓰면 마치 속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불안하다지만, 마스크를 오래 쓴 아이들이 언어 발달과 감정 인지 능력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비일상을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만큼 이젠 다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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