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1889-1977)이 감독하고 주연한 첫 번째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1940)는 영화사적인 가치를 넘어 인류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통렬한 의식을 느끼게 하는 영화로 평가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 파시스트들이 지배하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경멸하고 핍박받는 유태인들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영화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아리안 독재자 총통 힌켈(찰리 채플린)과 흡사한 용모를 가진 유태인 이발사 찰리(찰리 채플린 1인2역)는 총통의 비뚤어진 폭정에 의해 탄압받다 감옥에 갇힌다. 탈옥해 도망 중이던 이발사는 우연하게 총통과 같은 장소를 지나다 자리가 바뀌며 총통으로 인식되어 황제로 추대될 상황이다. 반대로 총통은 이발사로 오인되어 감옥으로 끌러간다. 이발사는 라디오 방송으로 전 국민이 듣는 황제수락 연설에서 마음을 다잡아 먹고 3분 30초의 통렬한 선언을 외친다. 양화의 전편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뿐 아니라 세기를 막론한 독재자들의 행태와 언행들이 적나라하게 비꼬아진다. 그런 대사들을 듣다 보면 찰리 채플린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잠깐, 힌켈 총통의 대사를 빌려보자 “민주주의는 피곤한 것이야. 분열을 조장하지. 언론은 통폐합되어야 국민이 단합해 !” “최고를 지키려면 희생이 필요한 법이야. 배고프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해” 이런 독재자들에게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지껄여도 그를 비호하는 추종세력들과 야비한 언론들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준다는 것이다. 그 신랄한 예가 힌켈 총통의 연설이다.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는 힌켈의 독일어(과연 온전한 독일어인지 모르겠지만)연설을 번역하지 않고 내보낸다. 관객들은 힌켈 연설의 내용을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고 나서 나온 자막에 폭소를 금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각하의 유일한 염원은 세계 평화뿐입니다”는 자막이 나오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통역에는 각하의 통역관이 준비된 원고대로 읽었습니다”는 자막도 나온다. 이 비유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과도 절묘하게 겹쳐진다. 독재자들에게 국민의 목숨이나 안녕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신랄한 비판도 쏟아진다. “사회정화차원에서 5만 명쯤만 구속하지. 하루에 5만 명” 여기에 자신을 지지하고 따라오는 부류들만 살려두면 그만이라는 무서운 심보도 나타난다. “반발하는 주동자 5명 전원 죽여버려, 추종자가 3천 명이라고 다 죽여!” “아리안만 남겨. 금발. 순수한 갈색만 남기고 다 죽여” 그런가 하면 기업과 금융을 틀어쥐고 복종하지 않으면 가차 없지 도륙하는 잔혹성도 보인다. 영화에서는 유태인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리려고 일시 유화정책을 쓴 총통이 돈을 빌리지 못하자 삽시간에 변해 유태인을 탄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체제에서는 기업이고 금융이고 독재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반대의견을 내는 정적들을 가차없이 숙청하는 폭력성도 돋보인다. 극중에서는 슐츠 사령관이 유태인 탄압을 반대하다 즉각 체포되어 교육대로 송치된다. 반면 아부하는 자는 삽시간에 승진도 시킨다. 내편 위주의 인사가 횡행하는 것은 독재의 전형이다. 그러니 바른 말하는 사람이 버틸 수 없다. 이 영화에서 독재자들의 근성이 최고조로 표현되는 장면은 힌켈 총통과 나폴리니 총통이 나누는 대화다. “민주, 자유, 평등은 약한 놈들일 뿐이다. 진정한 국민화합은 정책에 동조하고 지도자를 따르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진정한 가치를 발하는 것은 마지막 부분 무려 3분30초에 해당하는 명연설이다. 특히 눈에 띄는 문구가 군인들, 즉 권력을 수행하는 집단에 대한 호소다. 지금 같으면 군인, 경찰, 검찰쯤 될 것이다. “유태인이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인간은 원래 평등합니다... 욕심이 양심을 짓밟아 미움의 벽을 쌓았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질보다는 정신이, 지식보다는 진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불안과 공포는 전진을 두려워하는 자의 마지막 바람입니다. 독재자는 반드시 멸망하고 민중으로부터 뺏은 권력은 민중에게 돌려질 것입니다. 군인이여 복종치 마십시오 독재자에게만은! 그는 당신들을 조종합니다. 행동, 생각, 느낌까지도 그는 당신을 개돼지로 여깁니다.... 독재자는 그와 그 일당만이 자유롭습니다... 이제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 싸웁시다. 자유를 위해 투쟁합시다. 군인이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됩시다!” 1940년에 발표된 흑백 영화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을 되돌아보니 새삼 찰리 채플린의 위대함이 돋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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