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최근 3년간 발생한 아동학대 신고건수와 실제 피해사례가 경북 도내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본지는 지난 호에서 지역 내 아동학대 현황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경주지역 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추가로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해당 기관 관계자를 만나 들어봤다. 아동학대 예방과 실제 피해사례 발생 시 이를 전담하고 있는 경북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12년간 재직 중인 박고은 팀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특성상 이직률이 높다 하는데,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된 원동력은? 지역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2~3년(2.6년)입니다.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사명감으로 시작해 열악한 처우나 학대행위자의 협박 등으로 인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떠납니다. 저 역시 일을 하면서 고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요. 끝나지 않는 일들과 학대행위자의 협박이나 욕설, 희롱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고, 악몽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마음을 잡기 위해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렸고, 왜 이곳에서 일을 하려 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아동학대 기사나 현장을 접하게 되면 화도 나지만 다시금 제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른 상담원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 뛰고 있는 동료들로 인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는?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일에 대해 잘 모르고, 배우기 바빴던 신입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이에게 욕을 하고,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 내용이었습니다. 복합적인 학대(신체, 정서, 물리적 방임)로 사례 관리한 가정인데 주소지가 정확하지 않아 처음에는 인근 지구대를 방문했고, 그때는 지금만큼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던 시절이 아니라 협조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주소지 파악을 위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건물 인근에서 보호자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저녁까지 기다렸습니다. 기다림 끝에 나이가 어린 아빠, 엄마, 아이들을 만났고, 처음엔 역시나 거부적이었습니다. 연락도 잘 안됐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기다렸던 집일 거예요. 아빠, 엄마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이 생겼고,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나이도 어렸습니다. 가족들과 왕래도 거의 없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희망복지지원단과 드림스타트에서 협조를 잘 해줘서 가정에 필요한 부분을 지원했고,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아이들 안전을 확인했죠. 그러던 중 막내가 태어났고 유관기관이나 방문 시 의심상황이 관찰 보고된 적이 없어 학대피해아동으로 신고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연락을 한 통 받았어요. 아이가 응급실에 왔고, 다발성 출혈로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요. 잠을 자지 않고 우는 아이를 아빠가 때린 거였죠. 병원에 가서 아이를 보는데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습니다. 그 날 바로 집으로 가서 다른 아이들부터 시설에 보호했어요. 아이들과 시설로 이동하는 동안 첫째가 창밖을 보며 ‘엄마, 엄마’라고 말을 할 때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내는 나이가 어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입소 가능한 시설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사정해서 겨우 구했죠. 결국에는 위의 2명과 다른 시설에서 보호가 됐습니다. 이 사례는 지역자원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사례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이 시설에서 생활하며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모습을 봤을 때 ‘그 때 내린 결정이 잘한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사례입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아동학대 대응의 문제점은? 아무래도 대응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 아닐까요. 여러 사례를 조사해야할 때 지금보다 배치 인력이 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기관도 경주시만 관할하는 것이 아니어서 경주시에 집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 것이죠. 신고 건수가 늘었는데 판단건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하니 신고된 사항이 아동학대로 정확하게 판단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신고건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고 있는데,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과정에 시간이 너무 소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나? 경주시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로부터 아동친화도시로 인증 받았습니다. 아동친화도시 인증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나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 아동학대 예방에 관한 것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아동학대 피해 제로 도시 조성) 교육 강화, 지역 내 신고 체계, 안전망 구축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주시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소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84개소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현재 경북 내에 저희 기관을 포함해 4개소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4군데에서 경북의 23개 시·군을 관리하는 데는 인프라나 접근성 등의 문제로 어려움이 따릅니다. 아동학대조사가 공공화된 이후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전담 사례관리기관으로의 역할을 하게 됐고, 계속해서 시·군단위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관에서도 경주시를 포함해 6개 시·군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그 중 경주시는 신고 건수가 높은 편입니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집중적이고, 전문성 있는 관리를 위해 지역을 전담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필요한 것이죠. 아동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드러나지 않은 학대피해아동을 발굴함과 동시에 재학대 예방을 위해서라도 경주시를 전담할 아동보호전문기관 설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학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이동상담차량’입니다. 경주시의 경우, 시내권을 제외하고 양남, 양북, 외동 등의 지역은 거리가 멀고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없습니다. 또 피해아동이나 학대행위자, 그 가족들 중에는 개입 자체를 거부할 때도 있지만 가정방문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겨우 설득을 통해 상담을 진행해보려 하지만 결국엔 상담 장소가 적절하지 않아 걸림돌이 되는 것이죠. 야외에서 상담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으며(이웃끼리 관계가 친밀한 동네일수록 더 어려움, 주변 시선 등), 기관 차량에서 상담을 진행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합니다. 대상자들도 불편해하고, 특히 공격적인 특성이 있는 대상자의 경우, 상담원의 안전을 위해서도 좁은 공간은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상담은 주변 환경의 영향도 많이 받는데 상담 차량이 있다면 차량 내부를 상담 공간으로 만들어 기관 입장에서는 좀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대상자들 입장에서는 불편하지 않게 상담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난해 차량지원 사업에 신청했었지만 결과는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기에 올해도 신청할 예정입니다. 경주시민에게 한마디 아동학대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아동학대는 ‘은밀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시민분들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아무도 모르게 묻힐 수 있는 피해아동들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민들의 신고가 학대피해아동들을 구하고 있는 건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경북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을 대표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고, 계속해서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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