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담장의 목련 가지 끝이 한껏 부풀어 오른 모습이다. 머잖아 봄소식을 터뜨릴 기세이다. 지난 4일은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이었다. 태양의 주기로만 보면 봄의 절기에 들어선 만큼 봄 맞을 채비를 집집마다 하고 있다. 그런 습속으로 예전에는 대문에 붙이던 입춘방의 축문을 서로 주고 받으며 덕담을 건넸다. 입춘축의 여럿 중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 가장 많이 보인다. ‘봄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깃들고, 밝은 기운을 받아 기쁜 일이 많이 생기라’는 댓구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보고 지나치는 ‘건양다경’이라는 단어 중, 건양에 대한 아픈 역사가 보인다.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는 뜻에서 황제라 칭하고 원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894년 갑오개혁이 이루어지며, 공식적인 고종의 첫 번째 연호가 바로 이 건양(建陽)이다. 그러나, 이는 1895년 을미사변 후 양력을 강제로 도입하도록 하는 일본의 압력이 작용해 만들어진 연호다. 이 건양은 새로운 연호인 광무로 바뀌기까지 1896년 1월부터 대략 1년 8개월 동안 사용했었다. 입춘과 오랜 기간 대구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우리 정서에 녹아 있지만, 역사적 의미를 바로 알고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입춘은 희망의 봄을 맞이하는 절기인 반면,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아픔을 경계하는 계절의 마디이기도 하다. 입춘추위에 장독 터진다는 말이 있듯 꽃샘추위가 몇 번쯤은 더 왔다가야 비로소 봄이 오기 때문이다. 근년에 들어와서 날씨 변화를 더욱 많이 느끼는 터이고, 우리 지구가 여기저기 몸살을 앓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지구가 비스듬히 서 있고 그 바깥을 도는 태양의 길과 이 땅에 쪼이는 태양의 빛으로만 봐서 입춘이 딱 봄이 시작하는 날인 것은 분명하다. 전문적 용어론 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위치하는 날이다. 아직은 땅덩이가 식어 있고 그 냉각된 복사열과 함께 그간 엘니뇨와 라니냐로 일컬어지는 대류열 시스템의 고장 때문에 이상 기후를 자주 만난다. 참고로 동지는 황경 360도로 이 땅에 햇볕을 가장 적게 비치는 절기이고 춘분은 270도로 알려져 있는데, 절기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응용이 치밀함을 알 수 있다. 그런 치밀함과는 상관없이 요즘 날씨와 기후는 마치 천천히 다가와서 빠르게 휙 지나가는 불규칙한 진자운동을 보는 듯하다. 봄은 터무니없이 짧아져 순식간에 지나가고 봄의 온기를 채 느껴보기도 전에 이내 더워진다. 겨울과 여름만 존재하는 계절이 된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더운 기간만 따지면 아열대성 기후라고 할 수 있겠다.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 현실과 더불어 기후 역시 여느 사회나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타고 있는 모양세다. 더울 땐 너무 덥고 추울 땐 너무 춥다. 문제는 이 순환의 고리를 사람이 간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화석연료의 사용, 각종 산업공해와 교통공해들이 대두되며 지구가 심각한 환경위기에 처했다. 이게 이상 기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ESG라는 전문용어로 다소 늦은 듯 자리잡은 것은 그나마 매우 다행한 일이다. 70년대 중반 하나뿐인 지구가 오염되어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경계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을 들고 나온 지 반세기, 환경과 사회를 보듬는 사업이 실행되고 정책적으로 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지배구조로 확대된 것은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횡포를 적극적으로 방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입춘을 지나면서 아득한 남쪽에서 묻어올 봄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봄볕 같은 소망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입춘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가올 2023년의 봄은 희망과 긍정이 선순환하는 첫걸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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