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를 먹다 보면 꼭지 부분에 하얀 줄기가 보인다. 디오스프린이라는 성분으로 이게 변비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걸 칼로 도려내고 먹으면 아주 간단한 걸 귀찮아서 그냥 먹는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게으름이 정말 변비에 걸리는 거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항상 이긴다는 데 있다. 빈 접시 위로 홍시 꼭지가 늘어날수록 후회도 커져간다. ‘처음부터 도려내고 먹을 걸... 변비보다 죄책감이 몸에 더 안 좋다는데...’ 작은 후회는 점점 몸집이 커져간다.
캐나다의 유명한 산악인 제이미 클라크라고 있다. 에베레스트, K2등 세계 최고봉 일곱 개 중 여섯 개를 정복한 베테랑이다. 그가 한다는 말이 높고 험준한 산은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오기 여간 힘든 게 아니란다. 그래서 등반 전에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만 전화번호부만큼 두껍다고 한다. 함께 오를 등반자가 손바닥 두께의 리스트를 잘게 나누어 체크하고 또 체크한다. 그는 강조한다.
“산악 등반에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결국 작은 준비물들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이 베테랑은 왜 했을까? 한 번은 제이미가 동료와 함께 장장 14시간을 걸어 캐나다 로키 산맥의 고지대에 이르렀는데, 아차차! 라이터를 안 챙겨 온 거다! 얼은 몸을 녹이려면 뜨거운 물을 규칙적으로 마셔야 하는데 캠프도 설치하고 스토브도 준비됐고 그 속에 넣을 물 대용의 눈도 지천에 준비되었는데, 천원도 안 되는 라이터를 준비 못 한 거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고지대에서는 수분이 몸 밖으로 빨리 빠져나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탈수가 와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결국 제이미와 동료들은 이를 깨물며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14시간 동안 ‘그놈의 라이터! 천 원짜리 라이터!’ 아쉬워했을 걸 생각해 보면, 작은 것이야말로 정말 큰 법이다.
신년 벽두부터 미국 전역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된 사태가 벌어졌다. 그 원인은, 미국 내 민간항공 안전을 위한 정부기관인 연방항공청(FAA)의 데이터베이스 파일이 손상되어서다. 그것도 딱 하나인데 말이다. 활주로 폐쇄, 비행기가 이륙 전에 조종사와 지상 직원들이 주고받는 항법 신호 등이 중단되었고, 기상 악화 등 비행에 치명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전체가 완전 먹통이 되었다. 아주 경미한 손상으로 인해 1300여 항공편이 취소됐고, 1만여편이 지연 운항되었다고 한다. 작은 하나가 정말 뼈아프게 컸던 사례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2월에 발생했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너트 하나로 전투기 한 대가 추락했다. 공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정비사의 실수로 너트 하나를 빼먹는 바람에 연료 펌프 구동축의 톱니바퀴에 비정상적인 마모가 발생했다. 그래서 엔진에 정상적인 연료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엔진이 정지되었으며, 결국 전투기가 추락한 것이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불러온 무려 420억짜리 초대형 도미노다.
이 사고 외에도 자재 결함이나 인적 과실 등을 이유로 한 크고 작은 항공기 추락 사고가 5건에 이른다. 여기에는 북한 무인기 격추를 위해 이륙하는 과정에서 추락한 경공격기나, 역시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상황에서 현무 미사일이 엉뚱하게 강릉 쪽으로 떨어진 사고는 포함도 안 되었다. 모두 사소한 실수에서 발생한 인재임에 분명하다.
흔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자료 검색이나 카톡을 보내려면 검지 하나(아님 둘)면 충분하다. 엄지는 제법 두꺼워 자판에 잘 안 먹히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하는 사람은 여태 본 적 없고, 제일 편한 게 검지다. 재미난 건 1년 동안 손가락 하나로 핸드폰 위를 뛰어(?) 다닌 총거리가 풀코스 마라톤을, 그것도 두 번이나 완주할 정도라는 분석이다.
영국의 일크라는 마케팅 업체에 따르면, 핸드폰 화면을 올리고 내리고 문자를 주고받는 등 움직임을 분석해 봤더니 거의 83km를 뛰는 셈이더란다. 앙증스러운 검지가 에너자이저 건전지도 아닌데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낸 거다. 화면이 작은 핸드폰이었다면 더 열심히 아래위로 스크롤, 아니 내달렸을 걸 생각하니 둘째 손가락에 짠한 마음조차 든다. 사소한 게 엄청나기도 하고 감정도 흔들어대고, 아주 공사다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