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들판에 버려져 사료도, 물도 없이 홀로 방치된 강아지가 우여곡절 끝에 구조돼 경주로 입양된 사연이 전해졌다. ‘견생역전’의 마루 이야기다.
지난달 16일, 본보로 한 통의 이메일이 전해졌다. ‘제보합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이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한 유기동물 구조자 A씨의 구조부터 입양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구조자 A씨는 경주에서 한옥펜션 월정헌을 운영하고 있는 한 부부가 왕복 800km가 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강아지를 입양하러 왔고, 현재 사랑을 받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전해왔다.
그러면서 이번 마루의 이야기가 기사화돼 널리 알려져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나아가 동물보호법이 강화돼 인간과 반려동물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홀로 들판에 방치된 강아지, ‘백순이’
A씨는 수년째 경기도 일산 인근에서 개인적으로 유기동물들을 구조해 입양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A씨가 지난해 눈 덮인 들판에 홀로 사료도 없고 물도 없이 방치된 백순이(입양 전 마루의 이름)를 발견해 구조했다. 다만 그 구조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주인이 있는 강아지는 그 소유권 때문에 방치되거나 학대를 당해도 구조하기 쉽지 않습니다. 백순이의 경우가 그렇죠. 개집과 파라솔이 설치돼 비바람을 막을 수 있어 동물보호법에 위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할 지자체에서도 손 놓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강아지 백순이는 A씨의 끈질긴 노력으로 주인으로부터 포기각서를 받고 구조됐다.
“백순이를 주인으로부터 넘겨받을 때 욕도 참 많이 먹었습니다. 그나마 남편이 함께 있어서 그렇지 여자들만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죠. 백순이를 구조하고 각종 검사와 예방접종을 하는 등 임시보호 조치를 했어요”
동물구호단체 소속이 아니라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사비로 구조한 백순이의 검사와 진료를 진행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이제는 입양을 준비할 차례.
평소 SNS를 활용해 유기동물 입양을 진행했던 A씨는 직접 홍보물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언론사로부터 취재요청을 받고 유기동물 입양코너에 백순이의 사연을 소개하게 된 것.
“마침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던 한국일보에 연락해서 부탁을 드렸죠. 그래서 취재를 진행했고, 이렇게 백순이의 이야기가 알려져 경주에 거주하는 한 부부의 새로운 가족이 된 거죠”
왕복 800km, ‘백순이’에서 ‘마루’로
경주에서 한옥펜션 ‘월정헌’을 운영하는 손경익(66)·권순분(60) 씨 부부는 지난해 8월, 15년을 함께한 반려견 ‘산이’를 떠나보냈다.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던 손 씨 부부는 쉽사리 마음의 준비를 못 하던 중 우연히 ‘백순이’의 사연을 접하게 됐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건 준비가 필요해요. 1~2년이 아니라 최소 15년 이상 함께 지내야하죠. 그렇기에 산이를 떠나보내고 반려견을 키우고 싶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흘렀습니다. ‘백순이’의 사연을 접한 건 어찌 보면 정말 새로운 가족의 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새로운 반려견을 찾던 손경익 씨 부부는 경주시동물사랑보호센터를 두 차례 찾았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백순이’.
그들은 경기도 일산까지 여행 삼아 입양을 위해 왕복 800km의 거리를 움직이게 됐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백순이가 마음에 딱 드는 순간 여행 겸 1박 2일로 다녀올 생각에 바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백순이를 손경익 씨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됐고 백순이는 ‘마루’로 새로운 생활을 보내게 됐다. “A씨는 참 고마운 분이죠.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아닌데 마루를 잘 보살펴 줘서 고맙다며 선물을 보내주거든요. 좋은 연을 만들어준 A씨에게 오히려 저희가 고마워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지금도 꾸준히 연락해 반려견을 위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길
구조자 A씨와 입양자 손경익 씨 부부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단순 소유물로 인식해 아무런 준비 없이 반려동물을 분양 혹은 입양하다 보니 유기동물이 발생하게 된다고.-구조자 A씨 “제가 제보하는 이유는 지금도 인식개선이 되지 않아 1m의 줄에 묶여 사는 강아지들이 많잖아요. 이번 사연이 기사화돼 경주에도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나아가 동물보호법이 개정될 수 있었으면 해요. 또한 감사드리는 것은 경주에 저런 숙박업소가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장님 부부를 응원하고자 제보하게 됐습니다”-손경익·권순분 씨 “SNS에는 이미 마루 이야기가 퍼져있어요. 이번에 언론에도 나오게 됐으니 더욱더 힘을 내서 마루와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나 반려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