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청소년들과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반드시 던져보는 질문이 있다.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질문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멀뚱히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가끔 이런 대답이 나오기도 한다. ‘공부를 재미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 학창시절의 우리도 공부는 하라고 하니까 해왔던 현실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동료들에게 가끔 던지던 질문도 있다. ‘일이 재미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떨까? 그들이 어이없어 하면서 던지는 반문은 대개 이런 내용이다. ‘일을 재미로 하냐? 하라니까 하는거지...’ 학창시절에 가지는 공부에 대한 가치관이 그랬다면 직장에서 가지는 일에 대한 가치관도 비슷한 양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일의 재미에 대한 직장인들의 결론도 대부분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진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결론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공부든 일이든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공부나 일을 좋아하는 부류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공부나 일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자기에게 잘 맞는 공부나 일에 집중을 하는 부류이다. 공부와 일은 청소년기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가장 왕성한 시기를 지배하는 존재이다.
때로는 우리가 삶 속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되기도 하고,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강요받으면서 성장하고 그 결과로 안착한 직장에서는 일을 강요받으면서 살아간다. 일이든, 공부든 그것을 강요받는 상태에서는 자율이 없어지고 자율이 없는 상태에서는 쉽게 번아웃이 올 수 있다. 강요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부든 일이든 스스로 수행해나가는 자율성이 필요하지만 자율성을 가지는 것 또한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다.
일이나 공부의 자율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지만 억지로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자율성은 그것에 맞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생겨난다. 그 조건은 간단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해서 잘 되려면 그전에 무슨 일을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우선 되어야 한다. 공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모든 공부나 모든 일을 가리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분야를 잘 하도록 태어난다. 자신이 무슨 공부를 하고 무슨 일을 열심히 해야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일에 재미를 느끼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재미를 느끼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의 분야가 다양하지 않았던 이전의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는 노력주의를 신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직업이 세분화되고 다변화되고 있다. 심지어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측면에서도 경제적자본이나 문화적자본 같은 개인의 사회적 배경이 능력이나 노력보다 우세해진 상태이다. 이런 환경일수록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재미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쉽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은 지속가능성도 없다. 무조건적인 노력을 요구해오던 지배적 선입관을 이제는 과감하게 버려야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된다. 그리고 선입관을 깨고 나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