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에 대해 오만했다. 어릴 때 개구리, 뱀, 물고기도 잡아서 먹어보며 자랐다. 경주시 외동읍 냉천리는 그런 동네다. 농촌에선 덩치 큰 소와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인 내가 더 상위의 존재였다.
경주고등학교도 가고 그러면 촌동네에선 더 힘이 들어간다. 가난한 집안이 주는 약간의 소심함은 보상받는 길이 많다. 성적과 대학, 고시 합격 이런 정도면 좀 거만해도 된다고 미리 면죄부를 스스로 발급하기도 했다. 사람에 대해서도 교만해졌다. 인간이 원래 그런 수준의 존재다. 이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성장했다.
대학 2학년 즈음, 어느 일간지에 실린 책 광고를 보고 ‘털 없는 원숭이’를 읽었다. 1967년에 발간되어 논란이 되었던 책이라고 한다.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바라본 책이라 고매한 인간들이 화가 좀 났던가 보다. 당시 대학 초년생이던 나는 사회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진로 등 인생 계획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나에게만 힘든 시기였다는 착각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란 기껏해야 수십만 년 진화의 결과 또는 과정 중일지도 모르는 생명체의 하나일 뿐이지 아주 위대한 존재는 아니란 것을 알려 주었다. 내가 고상한 것이라 여겼던 것들, 이념, 가치 그리고 욕망껏 취하고 싶었던 물질적 성취, 그것들을 얻기 위한 갈등의 의미를 고민하게 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나름 건방진 내 존재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에 대해서 우월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 그러니, 제가 제일 잘났다고 각자의 논리로 주장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더더욱 우열을 말하지 않는 믿음 비슷한 게 생겼다고 할까. 공부 못하는 사람, 월급이 적은 사람, 다른 동네 그리고 종교, 정치, 이념, 성정체성 등이 다른 사람에게 차별적인 마음이 생기려고 하면, 늘 이 ‘털없는 원숭이’가 나를 깨운다. 알량한 생태계 층위에 있는 삐딱한 나를 깨우는 포식자 역할을 하는 책이다. 교만을 멈추게 한 신의 안배였을지 모른다.
살다 보면 가끔 공동체의 기본 안녕을 해하거나 나를 직접 위협하지 않는 어느 인간을 이유 없이 이간하려는 계기가 있다. 그럴 때면 털을 긁고 이를 잡아주며 서로 신뢰를 확인하는 원숭이보다 뭐 잘난 게 있을까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긴다. 문득 그렇다.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어도 약간의 소심함과 살면서 체득한 생존 방법이 그런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느 누구를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런 믿음의 싹을 틔운 청년기의 선물이었다. 이 털 없는 원숭이가 그런 책이다.
인간종도 이미 알고 있다. 공룡이 지구상에서 6500만년 우월종으로 존재하다 화석과 연료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에게는 아직 관념일 뿐이다. 지금 문명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있지만 또 다른 털 없는 원숭이라는 걸 자각해야 할 때다. 나 또한 반성하고 다시 새긴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현실의 권력과 이념들이 영원할 것으로 믿거나 동물과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번 읽어 보게 하고픈 책이다. 머리털이 곤두설 것이다.
이복우 : 국회에서 27년째 근무 중이다. 지금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한다. 스스로 ‘국회가 국민에게 인기가 없고,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를 감추고 포장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고향을 아끼며 여러 경주 관련 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공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