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의 조기 은퇴로 이탈리아 오페라는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이 공백을 채운 인물은 도니체티와 벨리니다. 문제는 누가 로시니의 후계자로 인정받느냐는 것이었다. 네 살 터울의 두 사람은 선의의 경쟁을 이어갔다. 둘 다 자국 선배인 로시니를 무척 존경했고, 먼저 파리에 둥지를 튼 로시니는 후배들의 작품이 파리무대에 오르도록 도왔다.
로시니가 콜브란과 결혼하고 나폴리를 떠나자 극장장 바르바이아가 대체자로 뽑은 이가 바로 도니체티(G.Donizetti/1797-1848)이다. 도니체티는 ‘안나 볼레로(Anna Bolena)’(1830)로 큰 성공을 거둔다. 안나 볼레나는 ‘천일의 앤’이라 불리는 앤 볼린(Anne Boleyn/1504-1536)의 이탈리아 이름이다. 앤 볼린은 호색한으로 유명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천일’동안 왕비로 재위하다가 참수당한 비극적 인물이다. 그녀의 딸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로시니가 ‘영국여왕 엘리사베타’(1815)를 통해 이미 다룬 바 있다. 이렇듯 영국왕실의 이야기는 당시 대중에게 먹히는 흥미로운 소재였다.
도니체티의 성공에 자극받은 벨리니(V.Bellini/1801-1835)는 이듬해에 ‘노르마(Norma)’(1831)를 발표하여 경쟁자답게 응수를 한다. 노르마는 갈리아 지방의 대사제 노르마와 사제 아달지사, 그리고 로마 총독 폴리오네 사이의 애증과 삼각관계를 다룬 비극이다. 노르마가 4개 음역을 넘나들며 부르는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가 유명하다.
이젠 도니체티의 차례다. 그는 당대 최고의 오페라 부파 중 하나인 ‘사랑의 묘약’(1832)을 선보인다. 줄거리는 이렇다. 사랑스런 마을처녀 아디나를 연모하는 네모리노가 약장수 둘카마라에게 속아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믿고 산다. 당연히 약의 효과는 없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네모리노가 삼촌의 유산을 물려받아 백만장자가 되자 아디나와 결혼하게 된다. 순진남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남 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 무척이나 유명하다. 이 아리아 때문에 사랑의 묘약이 비극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후계자 경쟁은 점입가경에 이른다. 벨리니는 마지막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를 1835년 1월에 내놓는다. 이 오페라는 청교도와 왕당파의 대립 속에서 피어난 엘비라와 아르투르의 갈등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혁명 후 부르주아 계급과 보수반동세력이 공방을 주고받는 광란의 시기였다. 이를 반영하듯 오페라에 광란의 아리아가 삽입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청교도의 2막에도 엘비라가 부르는 ‘그이의 달콤한 목소리(Qui la voce sua soave)’라는 아리아가 들어있다.
한편, 도니체티는 같은 해 9월, 불후의 명작이 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를 무대에 올린다. 이 오페라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매드 신과 광란의 아리아가 등장한다. 영화 ‘제5원소’에서 외계인 가수가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다가 박진감 있는 댄스 버전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이후 도니체티와 벨리니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었다. 벨리니가 이 공연의 초연 3일 전에 34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도니체티는 경쟁자 벨리니를 위해 레퀴엠을 지었다. 두 사람이 로시니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면서 ‘오페라의 왕’ 베르디가 두각을 나타내기 직전인 1830년대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