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충견 하치코(일본어: 忠犬ハチ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5년 함박눈이 내리는 도쿄 시부야역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죽어간 일본의 천연기념물 아키타 견 이야기이다.   충견 하치코(1923년 11월 10일~1935년 3월 8일)는 아키타현(秋田県, 일본 혼슈 북부의 동해 연안에 있는 현) 오다테시(大館市, 아키타현 북부에 위치하는 동해에 접한 시)의 아키타 견(秋田犬)으로,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인 진돗개, 경주개 동경이와 같은 단모종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체고는 60∼70cm, 체중 30∼50kg이며, 역삼각 두상과 귀가 쫑긋 서 있는 모양이고, 모색은 황색, 흰색, 검은색 등인 대형견이다. 충견 하치코 이야기는 일본 동경대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히데사부로(上野 英三郎) 씨가 하치(ハチ)라는 아키타 견을 키우는 과정에서 우에노 히데사부로 교수와의 충견 관계를 그린 영화이다. 충견 하치는 동경대학 농학부로 매일 출근하는 교수의 퇴근시간에 맞춰 시부야역으로 마중을 나가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에서 느끼는 교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히데사부로 교수가 학교에서 회의를 끝내고 동료 교수와 담화를 나누다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하치코는 시부야역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매일 마중 나가기를 반복하다가 죽게 된다. 충직한 하치코의 모습이 신문에서 다루어지면서, ‘충견 하치코’라는 이름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1934년에는 시부야 역 앞에 하치코 동상이 세워졌다. 1935년 3월 11세로 시부야 강의 이나리 다리(稲荷橋) 부근 노상에서 심장사상충으로 죽음을 맞이한 하치를 바탕으로, 하치 이야기(Hachi Story, 八チ公 物語)라는 이름으로 일본(1987년)과 미국(2009년)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상영되지 않은 영화이지만 세계적으로 반려견의 충직한 사랑에 대해 감동을 그린 영화로 세계인의 마음에 남아 있고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반려견의 영화이다.   1987년에는 ‘하치코 이야기’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고, ‘하치코 이야기’의 리메이크 판으로 2009년에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HACHI~약속의 개’(원제: Hachi: A Dog’s Tale)로 상영되었다. 기차역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인 교수를 기다리는 스토리를 미국 동해안의 도시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는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 러시아 등 유럽 애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아키타현의 아키타견은 일본의 국가 상징물이 된다. 코바야시 사부로가 그림엽서를 팔아서 세운 하치코 동상은 태평양 전쟁 무기 제작을 위한 금속 공출로 철거되었다가, 이후 1948년에 다시 동상이 시부야역 광장 중앙에 세워졌고, 그 후에 확장 개보수를 하면서 위치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하치코 동상 주변은 주인의 귀가를 기다렸던 하치코, 시부야역의 ‘충견 하치코(ハチ公) 동상’ 앞은 일본 사람들의 대표적 약속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치란 영화로 일본의 아키타견이 세계적 명견으로 등장하게 되고, 아키타견의 발상지, 그리고 ‘하치코’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아키타현 오다테시(大館市)에는 아키타 견 인기의 유명세로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현재 아키타는 아키타 박물관이 있고, 아키타관련 관광 상품이 개발되어 반려견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2017년 8월 개관한 ‘아키타견 만남의 장소’에서는 쌍둥이 아키타견이 교대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1년 동안 2만1000여명이 다녀갔다.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하치코가 태어난 고향 아키타현의 오다테시(大館市)곳곳에 하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반려견 스토리텔링으로 성공한 사례가 되었다. 현재 수천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신라 1000년의 수도 경주는 1500년을 살아 이어온 천연기념물 경주개 동경이의 고향이다. 1000년의 고도 이야기와 경주개 동경이가 스토리텔링화된다면 경주의 새로운 관광 아이템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주개 동경이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안목이 기대효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살아 1500년을 이어온 경주개 동경이는 경제성 동물이 아니라 문화재라는 인식을 한다면, 경주개 동경이는 경주의 상징이 될 것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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