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건강과 장수를 염원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서있다. 그리고 작가의 기억 속 잔상은 또 다른 잔상을 만들어 가며 화면을 채운다.
갤러리 미지에서는 오는 2월 3일까지 신광수 작가의 초대개인전을 개최한다.
‘소나무와 문양의 상징성’이란 주제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과거와 현재의 문양, 기호들이 주는 상징성의 공존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한 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른 소나무를 좋아해서 소나무 향 가득한 삼릉을 자주 찾았다는 작가는 이번 작품 속 등장하는 소나무 역시 대부분 삼릉 숲 소나무라고 했다.
“작품 속 소나무는 사실적에서 추상적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지만, 옛 우리 민화에서 등장하는 소나무의 상징적 의미는 그대로입니다. 건강과 장수를 염원하기도 하고, 하늘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의 상징 신단수의 의미를 담기도 했습니다”
화면 속에 보이는 것과 색감과 질감 등 부수적인 형태들을 통해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가.
퇴적층처럼 켜켜이 쌓여져가는 물감들은 화면 속에서 새로운 형상으로 발현된다.
“무의식 속으로 화면을 채우다 보면 그 속에서 어떤 형상이 보입니다. 덧붙이고, 빼기도 하면서 지나치지 않게, 가능하면 비 의식화 속에서 형상을 정리하죠.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잔잔하게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그렇게 화면이 채워집니다”
무수한 기억 중에서 유독 현재로 튀어나오는 것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기억이 된다는 작가는 잔상이 하나의 규정된 이미지로 자리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상이지만 구조적 추상이 아닌 머릿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일기처럼 끄집어내 화면상에 배치합니다. 벽화나 암각화에서 사람이 기원하는 바를 그림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제 작품 역시 그것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억은 늘 이미지로 남는다. 그것은 영화 속 장면같이 선명하기보다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하다.
소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배경 중에는 유년 시절의 추억, 현대사회의 문제점 등이 단순하고 소박한 문양과 선으로 표현된다.
지나가 버린 과거 어렴풋한 기억의 일부분이 화면 속에 자리 잡는 것. 주체가 사라진 곳에 감각들이 평등하게 떠다닌다. 따스함, 차가움, 무거움, 가벼움이 기억을 대신하고, 감각으로 살아난 기억은 작품 속에서 색이 된 선과 선이 된 색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냉혹하고 각박한 현실 속에서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찾길 바라는 작가. 그는 희로애락이 발현되기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가길 작품을 통해 기도한다.
신광수 작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개인전 4회 및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