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 치는 개들                                    김상미 남자다운 척, 남자다운 척, 남자다운 척 있는 대로 폼 잡다 어른이 된 남자와 여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있는 대로 내숭떨다 어른이 된 여자가, 결혼한 지 십오 년 만에 큰 집을 장만했다며 우리를 초대했다. 근사한 정원인 척하는 잔디밭과 몇 그루 꽃나무를 지나 실내로 들어서니, 우아하고 세련된 척하는 가구들과 전문가 뺨치는 오디오 시설에 영상 기기들까지 척, 척, 척 설치해 놓고, 자랑스레 우리를 반기며 아주 행복한 척, 에로틱한 척 은밀한 침실까지 슬쩍 보여주었다. 우리는 부러운 척, 탐나는 척 어머, 어머, 감탄사를 남발하며 아주 모던하고 담백한 척 건강미를 뽐내는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척, 즐거운 척, 황송한 척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제각기 준비해 간 선물 보따리를 풀며 마치 그들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인 척 환하게, 환하게 웃다가,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걸려 있는 C. M. 쿨리지의 그림 「포커 치는 개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어머머, 저 개들 좀 봐. 개들인 주제에 인간인 척 열심히 포커 게임 중이네. 기분 묘하게도 우리처럼 딱 일곱 마리네. 하기는 요즘엔 인간이나 개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세상이니 개가 인간인 척한다고 놀랄 일도 아니지. 우리도 저들처럼 신나게 포커나 한 판 칠까? 그러자 쪼르르 카드를 가지러 가는 주인 부부. 하긴 오늘 우리가 척, 척, 척하며 그들에게 흔들어댄 꼬리만 해도 얼마냐. 졸지에 인간 아닌 척 신나게 포커 치는 개가 된다 한들……. -개에게 풍자되는 인간 요즘 한국 문학장의 화두는 ‘비인간동물과의 종차를 넘어서는 연대’이다. 이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는 풍조라 범박하게 말할 수도 있다. 애완견과 애완묘를 키우는 집이 세 집 건너 한 집은 넉넉히 되지 싶다. 얼마 전 근린공원 놀이터에서 보았다. 젊은 부부가 덮개를 예쁘게 장식한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사람들이 생명을 구경하러 그리로 몰려가고 있었다. 누구도 그 유모차에 실린 게 쌍둥이 강아지들인 줄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근처에 할머니 한 분이 뭉쳐진 종이처럼 팽개쳐져 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자식 대신, 부모 대신 개와 동거하려 할까? 자신들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고, 오래도록 책임지기 싫다는 의견도 있다. 최문자 시인은 “점점 사람들을 벗어난다/오히려 짐승에게 친밀감이 생겼다”고 말하고 “그 개는 개가 아니다/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친밀감」)고 역설한다. 여기에 이르면 개보다 못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로 여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시는 “있는 대로 폼 잡다 어른이 된 남자”와 “있는 대로 내숭떨다 어른이 된 여자가” 결혼한 지 십오 년만에 초대한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시의 구조는 매우 짜임새가 있고 치밀하다. 이는 시작 부분 각각 세 번 시도되고 있는 ‘척’(“남자다운 척, 남자다운 척, 남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이 뒤에 ‘척, 척, 척’(“우아하고 세련된 척하는 가구들과 전문가 뺨치는 오디오 시설에 영상 기기들까지 척, 척, 척 설치해 놓고”, “오늘 우리가 척, 척, 척하며 그들에게 흔들어댄 꼬리”)으로 받는 짜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이 구절들에 나타나는 ‘척’은 가식이라는 뜻과 ‘일이 거침없이 아주 잘 되어 가는 모양’으로 의미가 미묘하게 걸쳐 있다. 기교와 짜임을 조금 더 세밀하게 보자. ‘척’하며 살아가는 인간들, 교양과 세련으로 포장하는 그 ‘내숭’과 ‘폼’은 사물에게도 전염된다. 정원의 잔디밭도 가구와 오디오도 근사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척한다. 말하자면 ‘척’이 지배하는 공간에는 사물마저 ‘척’으로 단장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척 하는 사람 앞에서 그 척을 받아주는 게 ‘나’이자 ‘우리’이기에 척의 바늘이 독자를 사정없이 찌른다. 그렇다. “부러운 척, 탐나는 척 어머, 어머, 감탄사를 남발하며” “맛있는 척, 즐거운 척, 황송한 척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사람이 나이며 당신이라고 풍자한다. 이 시의 결정타는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걸려 있는 C. M. 쿨리지의 그림 「포커 치는 개들」을 맞딱뜨리는 일행의 모습이다. 이어지는 “기분 묘하게도 우리처럼 딱 일곱 마리네”는 빼도박도 못하는 유사성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그림을 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개 한 마리가 슬쩍 자신의 다리 아래 포커 한 장을 숨기고 있는 장면을.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걸 넘어, 더 정확히 말하면 개에게 풍자되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 이 시의 개들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당신은 오늘 “척, 척, 척하며 흔들어댄 꼬리가 얼마냐”고 힐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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