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내 중앙의 트래펄가 광장에 국립 내셔널갤러리가 있다. 이 갤러리의 르네상스 시대 작품관에는 201cm×408cm 규모의 큰 그림이 한 점 있는데, 예수의 세족식을 주제로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가 그린 작품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할 때 일어난 유명한 세족식 장면이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대부분 사람이 최후의 만찬을 얘기할 때 관심 가지는 주제는 ‘빵’과 ‘포도주’다. 예수께서 “나를 기억하라”고 말하며 나눠준 음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빵은 예수님의 ‘살’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후대의 작품 중엔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예수와 제자들을 다룬 그림이 많다. 그 유명한 다빈치의 명작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이 대표적이다. 반면, 예수님의 세족 행위에 대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예수께서 식사 도중 일어나서 허리에 몸소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준 뒤 수건으로 닦는 행위다. 이를 통해 예수께서 말씀하려던 내용을 두고 사람들은 많은 해석을 내놓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족에 몹시 당황한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서도 예수께선 “이후에 알리라”하며 즉답을 피했기 때문이다. 다만, 세족식의 여러 의미와 상징 중에서도 섬김과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필자도 이런 해석에 가장 공감한다. 그 이유는 당대의 식생활, 음식문화에 대한 성찰과 분석에서 기인한다. 예수께서 생존할 당시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한 나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패권국가 로마였다. 유럽 대부분과 아프리카까지 손과 발밑에 두고 통치했던 로마는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국가였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시절, 로마엔 실력자들도 무수히 모여들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놀았던 일은 오늘날의 사람들조차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호화로웠다. 특히 권력자들은 최고로 화려하고 성대하며 엄청난 산해진미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파티를 즐겼다. 심지어 먹었던 음식을 토해내고 다시 먹기를 반복할 정도로 미련스러운 파티가 며칠씩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이 파티에서도 드디어 경쟁이 시작됐다. 파티의 성격이나 구성이 주최자의 힘, 권력, 재력 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더 화려하고 다양하게, 더 큰 규모로 파티를 열었고 심지어 무희와 철학자, 문학인들까지 불러들였다. 오늘날 석학들이 모여 학문 등을 발표하는 학술회를 ‘포럼’이나 ‘심포지엄’이라고 부르는 것도 로마 시대에 이처럼 ‘먹고 놀았던’ 파티와 연회에서 유래됐을 정도다. 그렇다면 파티를 여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과연 누가 했을까? 그 일들 중에는 시원한 물로 귀빈들의 손발을 씻겨주는 ‘황당한’ 일도 포함돼 있다. 그것은 바로 노예들이었다. 음식을 준비하고 나르는 일, 도착한 손님들을 접대하고, 술에 취한 손님을 돌보는 일 등이 모두 노예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가장 천한 지위를 가졌기에 가장 힘든 일을 비인격적인 수모까지 당해가며 허리가 휘어지도록 해야 했다. 당대의 노예는 이리저리 취급되는 물건이나 끊임없이 굴러가는 기계, 혹은 말 못 하는 가축과 진배없었기 때문에 황제가 권력자에게 노예를 선물로 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틴토레토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게 바로 이것 아닐까. 천한 부류의 노예들처럼 무릎 꿇고 발을 씻겨주는 예수의 모습에서 사랑과 헌신을 읽을 수 있다. 봉사가 어려운 것은 몸이 피곤하기 때문이 아니다. 존재의 가치가 상처받고 훼손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항상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참된 사랑을 다시 돌아보며 빵과 포도주 못지않은 세족식의 의미도 헤아려보았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