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연말. 크리스마스 캐럴보다 반가운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쁨이 가득한 날이다. 우리 아들이 언젠가 시어머니댁에 갔을 때 일이다. 아이가 할머니께 갖고 싶은 선물이 있다고, 생일선물로 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어머님은 당연히 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갖고 싶냐는 말에 아이는 “핸드폰”이라고 답했다. 어머님께서 슬쩍 제 눈치를 보시더니, “그건 네 엄마가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집에서는 철저하게 미디어 절제 교육을 하고 있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가장 큰 어른’이시다. 그러니 예의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라면, 할머니의 허락이 내려지면 TV 시청도 마음대로 가능하고, 간식, 음료수도 마음껏 아이들은 즐길 수 있다. 아이들과 할머니의 관계가 좋아지려면 어릴 때부터 할머니 댁을 자주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에게 할머니 댁이 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편과 의논하여 정한 규칙이다. 이런 교육관을 누구보다 아이들이 알고 있기에 엄마 앞에서도 떳떳하게 할머니께 핸드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나 싶다. ‘할머니가 왕이니까’ 그런데 내가 놀랐던 것은 어머님의 대답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면 “TV 좀 많이 본다고 애들이 이상해지지 않는다, 너희들도 어렸을 때 많이 봤다” “할머니 집에서는 마음껏 먹어야지, 아이스크림 두 개 먹는다고 애들이 죽니?” 이런 말씀으로 아이들의 일방적인 편을 드시는 어머님께서 나를 핑계 삼아 거절하시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결혼 13년, 어머님의 다 큰 아들이 어머니 댁에 와서 핸드폰 게임만 하는 걸 보시고 싫은 내색을 하시는 걸 봤었고(다행히 지금은 핸드폰 게임을 안 하신다), 그 아들, 즉 어머님의 손자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그것 때문에 아들과 손자가 티격태격하시는 것을 몇 년 보셨던 어머님께도 핸드폰만은 유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신 듯하다. 몇 년 전에 2G폰을 쓰다가 스마트폰을 쓰면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전자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핸드폰이 전자사전이자 계산기요, 어학사전이자 백과사전이었다. 거기에 길치인 나에게 네비게이션 기능으로 친근한 길동무가 되어주었으며, 각종 알람으로 일정을 체크해주고, 쇼핑, 비행기나 철도예약 등 내 생활 전반에 핸드폰 하나로 모든 일상에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내게도 각종 단체 카톡의 굴레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했고, 이런저런 불필요한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게임만 안 한다고, 동영상만 안 본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되겠구나 싶었다. 게임 중독만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폰 중독이 문제다. 식당에 가보자, 분명히 일행인 것 같은데 각자 핸드폰만 보고 있다. 이게 정상인가? 어른들도 이러한데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의 유년 시절, 청소년기는 몸이 급성장하고 마음이 급성장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몸을 이용해 많이 놀아야 하고, 친구들과 더불어 지내며 마음도 키워야 한다. 그런 경험을 많이 쌓아야 우리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우리 아이들 반에 스마트폰 없는 아이가 없어요. 선생님이 학교 숙제를 카톡으로 전해줘서 핸드폰이 없으면 안 돼요. 친구들은 다 있는데 우리 아이만 없다고 몇 날 며칠을 울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과연 우리 아이의 몸과 마음을 스마트폰의 노예로 만들 이유가 될까? 스마트폰 없이 지내는 아이들이 더 있음을 보여주면 된다. 아줌마는 그런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두어 번 모여서 온 가족이 함께 논다. 학교 선생님이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주시면 엄마 폰으로 연락 달라고 하고 스마트폰을 적게 사용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만질 기회를 아예 제공을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 아닐까, 의견을 드리자(아줌마 지인이 이렇게 했다).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스마트폰 없이 지내는 형, 누나,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줌마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가 스마트폰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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