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화가’로 불렸던 故노은님 작가의 유고전이 경주에서 열리고 있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천진난만한 작품을 그렸던 故노은님 작가의 ‘나, 종이, 붓’ 展이 내년 5월 28일까지 솔거미술관 1, 2, 3관에서 펼쳐진다.
노은님 작가는 1946년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으로 독일에서 우연하게 화가로 데뷔해 국제적 명성을 누린 작가다.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화면을 채우는 생명의 화가로 불린 그녀는 인간을 새로, 새는 물고기로, 물고기는 나뭇잎으로 거침없이 바꿔버린다. 그의 그림에선 경계가 없고, 막힘도 없다. 검은 물감을 듬뿍 묻힌 붓으로 쓱쓱 그려낸 작품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그림으로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유고전에는 회화 작품 59점과 사진 22점, 공예 20점, 미디어아트 2점과 아카이브 자료 등이 전시돼있다.
물고기와 새, 꽃 등의 자연물로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뤄온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
작가 특유의 과감한 필획으로 세상과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화폭에 담아온 그녀는 자유롭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 낙천적 성향이 그녀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가난을 이기기 위해 1970년 독일로 이주해 함부르크 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병원 한쪽에서 전시를 열게 됐고, ‘세상에 없던 그림을 그리는 동양 화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는 평을 얻었다.
전시를 본 교수 추천으로 27세에 미대에 진학, 이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하무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돼 2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독일 현대미술의 표현주의에 동양의 존재론이 버무려져 강렬하면서도 초월적인 작업을 구가했던 작가는 바우하우스,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 평화 비엔날레, 제5회 국제 종이 비엔날레 등 유수의 전시에 초대된 바 있는 독일 미술계에 확실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2019년 11월 독일 미헬슈타트의 시립미술관에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주솔거미술관은 당초 10월 노은님 초대전을 열어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가 융합된 작가의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선보이려 했다.
작가의 갑작스런 별세로 전시가 무산될 뻔 했지만 예술경영회사인 ‘노은님 아틀리에 골데나한트’의 도움으로 계획은 변경, 작가의 유고전으로 개최하게 된 것.
류희림 경주엑스포대공원 대표는 “노은님 작가의 갑작스러운 별세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작가의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경주시민과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노력해 준 골데나한트에 감사를 표하며, 노은님 작가의 유고전이 뜻깊은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독일 미술평론가 하인츠 틸은 ‘노 화백의 그림은 어떤 유행이나 판매 전술을 추종하고 있지 않다’면서 ‘보는 사람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관람객의 눈을 열고 그를 이끌어 나간다’고 평한 바 있다.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매체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여 왔던 노은님 작가.
그녀의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단순하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