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경주에서 초·중학교를 보내고 성장하던 시절인 한국의 70년대 초반은 급격한 산업화가 있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이촌향도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상당한 지방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2021년 기준으로 대구를 포함하는 경상북도의 인구가 515만명으로 전국 인구의 10분의 1수준이다. 하지만 분단 이전에는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였었다. 당시 라디오에서 중계하던 전국체전에서 인구도 많고 도세가 컸었던 경상북도가 의당 1위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비슷하게 고교야구가 인기 있었던 시절엔 대구상고와 경북고가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맞붙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태동하는 시기는 어쩌면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막 넘긴 시점이었다. 가히 초창기 삼성라이온즈가 만년 2위를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대구 경북 출신의 유명 야구선수들의 전성기는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의 실업야구에서다. 특히 그 실업야구 팀에 국군체육부대 산하 야구단으로 육군경리단이라는 팀이 있었다. 지금은 상무야구단으로 이름이 바뀌어 프로야구 퓨쳐스리그에 참가한다. 육군경리단이 70년대 후반 실업야구를 주름잡던 일도 동시에 기억난다. 야구팀으로 기억된 이 경리단은 대한민국 국군의 부대로 국군의 재정을 관리하는 부대라고 한다. 훗날 3군의 경리단이 통합하면서 국군재정관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제 야구도 부대명칭도 잊혀졌지만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유행하고 있다. 옛 경리단 부대가 위치해 있는 길이라는 뜻에서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녹사평역이 근처에 있고 이태원동에 속한 지역이다. 경리단이 유명해진 것은 온 국민의 걷기 열풍과 더불어 올레길이 유행한 이후다. 상가와 카페가 겸한 골목이 유행하면서 경리단길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이 길은 용산 미군기지와 가까워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그냥 외국인이 좀 돌아다니는 소박한 주택가였다. 그러다가 평택으로 미군기지 이전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식당이나 술집 같은 가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식당보다는 분위기 좋은 술집이나 카페가 많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찾아오며, 좁은 길을 중심으로 주택들이 가게로 개조되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호황이던 이 길이 코로나 이후 완전히 침체했다가 최근 들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지난 할로윈 축제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이태원참사에는 경리단길의 이러한 분위기도 맞물려 있다. 경주에 황리단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성장하던 시기엔 들어보지 못한 길이라 의아했다. 황리단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여 찾아보니 황남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으로 만들어졌단다. 심지어 이 경리단길에서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이 파생된 길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 경리단길은 쇠락했다. 이 경리단길에서 유래한 무슨무슨 ~리단 길이 수십 개가 되는데 대부분 실패하고 성공한 것이 전주의 객리단길과 우리 경주의 황리단길이라고 하니 황송할 따름이다. 성공여부를 떠나 이런 길이 우후죽순 생긴 자체로 서울을 모방하는 지방의 시대라 할 수 있다. 80년대 전국의 로데오 거리가 서울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것과 흡사하다. 제주에서 시작된 올레길이 전국적인 ~~레길로 유행한 것도 결국 향유의 주체가 서울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트렌드다. 이런 길의 활성화는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문화적 힘도 상대적으로 커진 반증일 것이다. 특히 ~~길의 내면에는 종전에 가졌던 영어와 외국어 콤플렉스를 벗어난 것이 한결 좋아 보인다. 거기다 번지 중심에서 길 중심으로 주소를 바꾸면서 ‘~~로’이던 길이 ~~길로 바뀐 것은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트렌드로 보여 더욱 좋다. 그러나 황리단길은 서울 문화를 단순히 이름만 차용해 썼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런 차원에서 기왕이면 사고방식과 문화도 서울 중심에서 경주 중심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물론 사소한 명칭이라도 그것의 중심은 소비자와 이용자인 것이 당연하지만 경주 문화를 향유하는 시민들의 자부심과 외부인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명칭이라 단언한다. 이왕이면 경주 황리단길이 대릉원길과 포석정길이 되어 전국의 길을 선도했으면 싶은 마음이다. 그 길에 들어 있는 콘텐츠도 조금씩 경주만의 것으로 차별화되고 다듬어져 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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