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만큼 먹었고 잘 만큼 잤다                                                                                                 김미소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을 골골댔지 세비체 다이너 타말리 라클레트 죽기 전에 꼭 먹어 봐야 할 음식 처음부터 먹어 본 적 없으니 그리울 일도 없다 피자 치킨 탕수육 냉면 족발 그래, 먹을 만큼 먹었다 가서 좀 쉬지 그러니? 잠은 어차피 밤에도 자는 걸요 영원한 잠에 대해 생각한다 적당히 행복하게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칼 한 자루 숨기고 살았나 보다 엄마의 심장을 찔렀나 보다 나를 왜 낳았느냐고 말하지 못하는 슬픔 구멍이 커지는지도 모르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칼이 아닌 총이었나? 걸음마다 재가 쏟아진다 마른 울음을 우는 걸까 가슴이 무너지는지도 모르고 등을 구부러뜨린 엄마는 덤덤하게 비질하며 항생제를 수거한다 -딸과 엄마, 양가성의 마음 무늬가 돌올한 시편 김미소의 시는 자신의 삶에 솔직하다. 그러면서도 사실과 반어를 미학적으로 여며 탄력있는 문장으로 튕길 줄 안다. 그런 시들이 여럿 있지만 오늘은 그 중 한 편을 소개하기로 한다. 시인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을 못 먹는다. 아토피 때문이다. “붉은 손톱을 씹어 먹으며 겹겹의 표정을 벗겨”내는(「나의 잘못이 아닌」), 얼마나 심했으면 시인은 그 고통을 “가죽이 산 채로 벗겨지는/개의 마지막”(「아토피」)이라 생각했을까.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을 골골댔지”는 바로 아토피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그러니 시인은 “죽기 전에 꼭 먹어 봐야 할 음식”으로 “세비체 다이너 타말리 라클레트”를 떠올리다 이내 “먹어 본 적 없으니 그리울 일도 없다”고 시니컬한 냉소를 흘려 보낸다. 남미의 날생선 샐러드 세비체나, 미국의 튀김음식 다이너, 멕시코 전통음식 타말리. 삶은 감자에 치즈를 버무린 스위스 음식 라클레트는 당연히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남들이 쉽게 다 먹는 “피자 치킨 탕수육 냉면 족발”도 “먹을 만큼 먹었다”며 짐짓 반어를 넘어 자조의 어조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내면의 체념과 자조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게로 튄다. “가서 좀 쉬지 그러니?” 하는 엄마의 권면에 “잠은 어차피 밤에도 자는 걸요” 냉정한 비아냥을 쏟아낸다. 이내 화두는 염원한 잠, 죽음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적당히 행복하게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왜 가슴 안에 “칼 한 자루”를 “숨기고” “엄마의 심장을 찔렀나”는 회한. 그러나 시인의 마음엔 여전히 “나를 왜 낳았느냐고 말하지 못하는/슬픔”이 차올라 “구멍”을 키운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참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이 구멍은 마침내 “칼이 아닌 총이었나?”로 이어진다. 자신의 앞날에 “걸음마다 재가 쏟아”지는 것을 예감하며 우는 “마른 울음”. 그러나 나는 이걸 다 가슴에 담아야 하는 어머니의 “가슴이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등을 구부러뜨”려 “덤덤하게 비질하며 항생제를 수거”하는 마음. 딸과 엄마의 이런 감정, 양가성의 무늬가 돌올한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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