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무대에 자주 오르는 이탈리아 오페라는 거의 대부분 19세기의 작품들이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4대 천황을 동상으로 모셔놓고 있다. 그들은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 그리고 베르디다. 이들 중에서 로시니(G.A.Rossini/1792-1868)가 맏형이자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의 선구자이다. 그는 벨칸토(bell canto) 오페라의 좌장으로서 도니체티와 벨리니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오페라의 왕 베르디에 이어 푸치니가 독일 오페라의 거센 도전에 맞서 싸우는데 크나큰 초석이 되었다.
로시니는 페사로라는 작은 도시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른 연주자이고, 어머니는 가수였다. 로시니도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14살에 첫 오페라 ‘디메트리오와 폴리비오’를 작곡하더니 10대에 이미 여러 곡을 만들었다. 21살 때(1813)는 ‘탄크레디’와 ‘알제리의 이탈리아인’이라는 수준급 오페라를 만들어 흥행시켰다.
그런데 이런 재능을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다. 나폴리의 전설적인 극장장인 바르바이아(D.Barbaia/1778-1841)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로시니를 스카웃한다. 거액의 연봉에 카지노 지분까지 제안 받은 로시니는 산 카를로 극장을 위해 매년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들기로 한다. 이 계약은 로시니가 평생 여유로운 작곡생활을 하는데 두둑한 밑천이 된다.
첫 번째 작품은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소재로 다룬 ‘영국여왕 엘리사베타(Elisabetta, regina d`Inghilterra)’(1815)이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철의 여인 엘리자베스를 찬양하는 내용일까? 아니다. 여왕의 치적이 아닌 버진 킹(처녀여왕)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여왕을 질투의 화신으로 몰았다. 당시에도 이런 통속적인 내용의 드라마가 대중에게 먹혀 들어갔을까? 그렇다. 오페라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로시니는 나폴리에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듬해인 1816년은 로시니가 절대 잊을 수 없는 해다. 오늘날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로시니의 대선배 격인 파이지엘로(G.Paisiello/1740-1816)가 1782년 초연하여 이미 흥행돌풍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불과 24살짜리 애송이가 76세 원로 작곡자와 맞장을 뜬 것이다. 로시니의 초연은 파이지엘로의 골수팬들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 그들은 야유를 보내고 무대에 쥐를 풀어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어렵지 않게 관객들의 마음을 사게 된다. 파이지엘로가 바로 그 해(1816)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망자의 오페라를 소비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파이지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없다. 로시니만 기억한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주목할 만한 아리아는 로지나가 부르는 ‘Una voce poco fa(방금 들린 그 목소리는)’이다.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대단한 고음의 노래다. 2021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펜트하우스Ⅱ’에서 천서진(김소연 분)의 대역으로 오윤희(유진 분)가 이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오윤희는 엄청난 고음으로 라이벌인 천서진의 기를 꺾어 버린다. 벨칸토는 ‘아름다운 소리’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하지만 아름다운 소리에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벨칸토 시대가 저물고, 20세기 중반까지 벨칸토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