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박라연 이 세상 모든 눈동자가 옛날을 모셔와도 먹고 마시고 만져지면서 닳아지는 물질이 이제 저는 아니랍니다 생각하는 일만 허용되는 색깔로 살게 되었습니다 천근만근 애인의 근심만은 입에 물고 물속으로 쿵 눈빛마저 물에 감기어져 사라질 태세입니다 그림자의 손이 아무리 길게 늘어나도 ㅉ이 ㅃ으로 ㄴ이 ㅁ으로 쳐질 때 있습니다 한계령에 낙산사 백사장에 우리 함께 가요, 라고 말할 뻔했을 뿐입니다 생각만으로 벼린 색이 되는 날이 제겐 있었어요 그림자 스스로 숨 거두어 가주던 그날 배고픈 정신의 찌 덥석 물어주는 거대한 물방울의 색깔을 보았습니다 -​생각이라는 작용을 통해 한없이 확장된 더 큰 자아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라는 시집으로 독자에게 널리 알려진 박라연이 오늘 소개할 시와 동명 표제를 가진 시집을 냈다. 어느 한 편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시편들은 다시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화법과 비유로 독특한 경지를 열고 있다. 세상이 시인의 몸 안에서 육화된 시집이랄까? 시를 공부하는 분들은 꼭 읽었으면 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제목만 놓고 보면 “무슨 이런 애인이 다 있는가?”하고 생각할 법한 시다. 그러나 애인이라는 말 속에는 불순물이 없다. “먹고 마시고 만져지면서 닳아지는 물질, 즉 육체적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대가 없이 줄 수 있는 어떤 사랑이 내재해 있다. 여기서 ‘애인’은 소중한 존재이니 천사처럼 숨어 있거나 멀리 있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그 애인에게로 향하는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인에 대하여 만나지 않고 “생각하는 일만 허용되는 색깔로”산다. 그것은 감정이입을 통해 나의 자아를 한없이 확장시켜 애인의 즐거움에 함께 즐거워하고 그의 고통에 함께 통점(痛點)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풍문으로나 기미로 “천근만근 애인의 근심”을 알아차리면 그걸 물고 “물에 감기어져 사라질”것을 기꺼이 감수한다. 나의 마음은 항상 그에게로 향한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 여하에 따라 우리는 바로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먼 곳에 있는 이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도 있다.   나는 그를 생각하는 색깔 속에 살고 있다. 이는 그와 함께 박자를 맞춰 움직이는 존재라는 말도 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느끼는 것까지가 자아`라는 것이다. 때로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그림자의 손이 길게 늘어나”그에 대한 평정심이 흩어질 때(“ㅉ이 ㅃ으로 ㄴ이 ㅁ으로 쳐질 때”)도 있다. 그때 나는 “한계령에 낙산사 백사장에 우리 함께 가요, 라고/말할 뻔”하다가 간신히 참는다. 그건 천사에서 범인(凡人)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 벼린 색이 되는 날” 즉 순정한 마음결의 무늬가 거듭나는 날은 그리하여 “그림자 스스로 숨 거두어 가주던 그날”이다. 그날은 놀라와라. 보이지 않는 힘이 생명의 짝으로 만나 “배고픈 정신의 찌/ 덥석 물어주는 거대한 물방울의 색깔을 보”게 된다. 나와 그 사이 우리의 보물일지도 모를 알 수 없는 은밀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 삶의 베타는 완성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이 가능한 역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라연의 이 시에서 우리는 드물게 생각이라는 소중한 마음의 작용을 통해 한없이 확장된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양상을 본다. 시인은 이렇듯 품이 넓은 자아를 탄생시킨다. 감정은 자아의 경계 안에서 그 자체의 거리를 가진다.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멀리 숨어 있어도 생각만으로 벼린 색이 되는 애인을 위해 내게는 `호의`라는 비상식량이 충분한가를 생각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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