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지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야말로 화수분처럼 새로운 가수들이 매스컴을 통해 등장한다. 전문 소속사가 연습생을 육성해 신인 가수를 데뷔시키는 일도 있지만 근래에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가수들이 배출된다. 십여 년 전부터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아이돌을 뽑는 프로그램에서부터 특정 장르인 힙합, 남성 사중창, 트로트, 합창까지 장르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가수들이 몇 년 혹은 십여 년 동안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오디션에서 일등을 한 가수 중에는 처음에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잊혀져가는 이도 있고, 어떤 가수는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여러 장의 앨범을 내고,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어떤 가수는 금세 잊혀지고, 또 어떤 가수는 오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걸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후자는 다른 누군가를 쫓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졌고 그 고유한 매력을 계속해서 발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가사와 독특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며 롱런하는 가수로 악동뮤지션, 장범준, 볼빨간사춘기 등이 떠오른다. 이처럼 자기 색을 갖고 꾸준히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은 침체기에 빠진 서예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시각예술 장르 중 가장 보수적인 서예는 현재에도 옛 대가들의 글씨를 그저 따라 쓰거나 작품의 내용 역시 현재와는 무관하게 중국 당나라 시(唐詩)나 부(賦), 시조, 한글 가사 등 전통의 것을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전신인 조선미술전람회는 1922년에 시작되었다. 약 100년 전에 열린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중 서예 파트를 살펴보면 현재 인사동 등지에서 열리는 서예 전시의 도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흡사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서예는 형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을 때도 우리나라의 서예는 재료와 매체, 내용 등에서 전통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글씨를 쓴다고 알려져 있다. 그 사이 서양화나 조각 등 다른 예술 장르는 치열한 시도 속에서 상당한 변화와 혁신을 이루었다. 서예가 옛 것을 규범으로 삼은 예술이라고 하지만, 그 전통을 너무 좁게 해석하여 자신의 선생만을 답습하고 있지 않을까? 자문해본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어려운 한문을 내용으로 담은 서예 작품을 현대인들이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변화된 시대에 맞게 서예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예를 기초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현대작가로 중국의 쉬빙(徐冰, 1955〜)이 있다. 그는 한자 조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어 알파벳을 만들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대형화했다. 예술계의 원로들은 아무도 읽지 못하는 문자의 탄생과 그의 대형 작품을 혹평했으나, 의미를 뺀 그의 문자 작업은 형상만으로 작품의 아름다움을 전달했으며 감상자는 글씨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서예가 현대 미술계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작가는 전통을 충분히 숙고하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담은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 쉬빙은 전통을 존중하되, 그것을 분해해 이전에는 없던 조합을 꾀했고 이러한 그의 제작 방식과 개성적인 작품은 현대 미술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개성을 찾고 구축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주변의 비난과 혹평 속에서도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오늘날의 서예에서 글자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글자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색을 찾는 것은 서예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각자가 하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고, 경주라는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경주는 옛 신라의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된 독특한 공간이다. 경주를 개발할 때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나 외국의 관광도시에서 진행된 사업을 무분별하게 벤치마킹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경주는 경주다워야 한다. 경주가 자신만의 색이 선명해져 그것을 오롯하게 보여주는 도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박진우 님이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이번 호를 끝으로 칼럼을 그만둡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밝혀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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