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지구상에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인간이외에 인간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동물이 있다. 예전에는 애완동물이라 하였고, 오늘날에는 사람의 동반자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이 된 개와 고양이다. 이제 개와 고양이는 사람이 사는 생활공간 깊숙이 들어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급기야 사람이 사는 공간, 가장 안락한 공간의 주인이 되었고, 사람은 그 공간에서 밀려나 있다. 집안의 최고 존재가 되었다. 혼자 가정에서는 반려동물이 아들과 딸이 되어 있다. 아예 호칭도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언니로 되어 있다. 애견인에게는 혈연이 된지 오래 됐다. 조선시대에는 임금님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에 빠지게 되면 백성을 돌보는데 소홀해질 수 있다하여 직접 키우는 것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금님들이 완물상지(玩物喪志:애완동물 사랑에 집착하면 소중한 본심을 잃어버린다)의 의미를 망각하고 애완동물을 키운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세조는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으로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수양대군에 봉해졌다. 문종이 사망하자 어린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법당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오대산에 위치한 상원사를 찾았는데, 이때 법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고양이가 막았다고 한다. 옷자락을 물고 늘어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세조는 곧바로 내부를 확인해 보라고 명을 내리고 그 결과 잠복해 있던 자객들이 발각되었고, 목숨을 구한 세조는 고양이에게 3품의 직을 내리고 붉은 천을 감은 허리띠인 전홍대를 하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조선조 숙종(재위 1674~1720)에게는 퍼스트캣이 있었다. 고양이의 이름이 ‘김손(金孫)’ 혹은 ‘김묘(金猫)’라 하였다. 숙종대의 인물인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의 시문집 東圃集에는 숙종의 고양이 김묘를 읊은 글이 실려 있다. “궁중에 황금색 고양이가 있었으니 숙종 임금께서 사랑하여 김묘라는 이름을 내렸다. 김묘야! 하고 부르면 곧 달려오고, 사람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었다. 김묘는 숙종 임금님과 함께 밥을 먹었고, 차가운 밤에는 임금님 곁에서 잠들었고, 비빈(妃嬪)들도 감히 고양이를 길들이지 못하였고, 임금님은 고양이를 지극히 사랑하셨네” 1720년 숙종이 승하하자 김묘는 식음을 전패하고 20일 동안 곡만 하다가 결국 죽었다 한다. 자신을 사랑한 숙종을 따라 간 김묘의 충성심에 감동한 인원왕후의 지시에 따라 김묘에게 비단 옷을 지어 입히고 수레에 실어,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 가는 길 옆에 묻었다 한다. 또 성종(재위 1469~1494)임금님의 동물사랑은 유별났다. 콩 400석에 해당되는 흑마포 60필 가격으로 낙타를 수입해서 키우려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좌절되기도 했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송골매를 길렀고, 원숭이도 키웠고, 원숭이에게 흙집과 옷을 만들어줬다. 원숭이가 얼어 죽자 애달파 했다. 성종의 아들 연산군도 애완동물을 끔찍하게 사랑했다. 궁궐 안에 매와 개(犬)를 키웠다. 이밖에도 선조의 아들이자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1574~1609)도 “개와 닭, 오리, 앵무새 키우기를 좋아했다고『대동야승』에 기록되어 있다.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1735~1762)도 궁중에서 개를 키운 것 같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개 그림 중에는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그림이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김영삼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반려동물을 키웠다. 이승만 대통령은 코커스파니엘, 박정희 대통령은 진돗개, 스피츠, 치와와, 전두환 대통령은 진돗개인 설이와 송이, 노태우 대통령은 요크셔테리아, 김대중 대통령은 풍산개인 우리와 두리, 그리고 진돗개, 삽살이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할 때 삼성동 주민들이 선물한 진돗개 두 마리 새롬이, 희망이와 진돗개 사랑이, 스피츠 방울이, 노무현 대통령은 진돗개, 보더콜리, 이명박 대통령은 진돗개, 문재인 대통령은 유기견 토리와 풍산개(토리, 마루, 곰이)와 고양이 찡찡이 등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키운 반려동물이다. 이제 반려동물은 21세기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고, 반려동물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