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일본 국보1호로 지정되어있는 고류지[광륭사(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일본 열도가 바다에 가라앉는다면 나는 저 관음상을 가져가겠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칼 야스퍼스도 이 상을 보고 이렇게 극찬하였다.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어떤 조각 예술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 있는 예술미의 극치다”
그런데 이 반가사유상은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고, 태백산 홍송으로 신라에서 제작하여 일본에 기증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 국립박물관에는 역시 신라 때 제작되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2점의 반가사유상이 있다. 그리고 이곳 기림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반가상이 있다. 만약 앙드레 말로와 칼 야스퍼스가 이 3점의 반가상을 모두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천불전 마당 앞쪽으로 ‘ㄱ’자 건물이 있다. 기림사에서 전해지고 있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기림유물관이다. 문화재에 관심이 있다면 기림사 전각을 모두 둘러본 뒤에 꼭 찾아야 한다. 다른 사찰의 성보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건칠보살반가상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문화재의 비중, 관람객의 동선 등을 고려하여 문화재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곳 유물관에서는 이 보살상을 중앙에 모시고, 그 앞에 예배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 건칠보살반가상은 높이가 93cm이고, 왼쪽 다리를 구부려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린 반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반가사유상과는 다리의 방향이 반대이다. 오른쪽 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왼손은 무릎 뒤의 대좌를 짚고 있다. 긴 머리를 틀어 상투를 올렸는데 끝부분은 세 가닥으로 갈라졌다. 두 단으로 된 아름다운 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에는 당초문을 새겼다. 고개를 숙였는데 뺨이 통통하고 눈매가 또렷하다. 쌍꺼풀이 있는 눈과 오뚝한 코, 꼭 다문 입술이 어울려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옷은 가운을 걸친 듯이 양어깨를 감싼 천의를 입고, 옷자락은 양 손목을 한번 휘감아 아래로 내렸다. 가슴에는 승각기 띠 매듭으로 묶었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 군의의 옷 주름이 넓게 퍼져 대좌를 덮고 있다. 뺨과 가슴, 배, 그리고 무릎에서 부드러운 몸매가 드러나게 팽만감을 주었다. 귀걸이는 꽃 모양이고, 세 가닥의 장식이 달린 화려한 목걸이를 하고 있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다소 빈약한 느낌이고 손과 발이 작은 편이다. 이 반가상은 이국적이고도 단아한 아름다운 상호와 세련되고 간략한 옷 주름의 표현에서 당대 최고의 장인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칠기법은 삼베에 옻칠을 여러 번 반복하는 까다로운 기법으로, 그만큼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옻은 비용이 워낙 비쌀 뿐만 아니라 국가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재료였다. 당시 건칠의 주재료로 사용되는 옻을 구입하여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은 왕실 및 고위관료층으로 제한되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는 건칠상이 더러 조성되었으나, 이후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대신 나무와 흙으로 불상을 제작하는 것이 크게 유행한다.
이 보살상은 X선 투과를 통해 조사한 결과 황토, 목분, 호분 등을 혼합하여 반죽하고 이 재료로 외형을 만든 후에, 그 위에 옻칠을 도포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의 묵서에 ‘正月始至四月初八日’이라 하여 1월부터 4월까지 약 3개월의 기간에 조성을 마칠 수 있었다. 목조대좌에는 또 다음과 같은 묵서명이 있다.
‘弘治十四年辛酉正月始至四月初八日新羅含月山西水庵堂主造洛山○觀音菩薩造佛’ 즉 1501년(연산군 7)에 조성된 관음보살상으로 서수암의 본존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건칠보살좌상은 이곳 기림사 이외에도 양양 낙산사, 영덕 장륙사, 문경 대승사, 대구 파계사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기림유물관에는 건칠보살좌상 이외에도 나무 비석 8점, 금구 1점, 석조 치미 1점 등의 유물과 시왕도, 지장보살도 등의 불화도 있다. 나무 비석은 돌 비석이나 철 비석에 비해 흔하지 않은 예로 그 가치가 높다. 금구는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 사용하는 일종의 타악기이다. 치미란 건물의 용마루 양끝에 부착한 대형 장식 기와인데, 주로 점토로 만들었다. 기림사 석조 치미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점토로 된 기와 제품이 아닌 돌로 이루어진 것으로는 유일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