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에 사람들은 죄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꿈나라에서 무지개랑 놀고 있는 아기와 나, 딱 두 사람만 빼고. 살짝 웃는 듯 자고 있는 아기 앞이마의 볼록한 모습이 딱 엄마(역시 폰을 보고 계신다)와 닮았다. 어쨌거나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는 뭔가를 입력하고 열심히 스크롤다운한다. 나만 이들과 다른 도도한 철학자인 척했지만 고백하건대 여태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잠시 쉰다고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나를 포함한 이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 조그마한 직사각형을 인간들이 이렇게나 좋아했나 싶을 정도다. 여차하면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들어갈 기세다. 실질적으로 최초의 컴퓨터였던 에니악(ENIAC)만 해도 그렇다. 진공관만 1만8000여개가 들어간, 30톤 무게의 초거대 계산기(!)가 이젠 손바닥만 해졌다. 이런 추세라면 피부 안에다 심는 형태의 컴퓨터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갑자기 내 눈앞의 이 장면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인간의 스마트폰 무한 사랑(이걸 집단 무의식이라 할지 의례라 부를지)을 말이다. 이걸 기록하려 해도 스마트폰이 필요한 걸 보면 뭐 칩 이식 기술을 보유한 회사 주식이라도 사둬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만약 이들을 찍는다면 아마 다들 쳐다볼 것 같다. 카메라의 찰칵하는 소리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하는 자기 객관화를 강제할 수는 없다. 또한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서도 안 된다.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저장하면 좋을까? 분명 문화인류학적으로도 보전 가치가 충분하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이 사진을 연구하리라. 가상세계 안에서 태어난 자신들과 달리 21세기 우리 선배님들은 이를테면 디지로그(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기술이 혼재된)의 마지막 세대라고 평가할 것이다. 사진 말고도 방법은 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그림 그려주는 프로그램이 뭐가 핫하나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래서 고른 게 ‘DALL-E 2(https://openai.com/dall-e-2)’다.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OpenAI)에서 만든 DALL-E는 글자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이다. 참고로 이름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애니메이션 주인공 윌-E(WALL-E)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림은 이제 그리는 게 아니라, 글자로 묘사하는 세상이다. 주제를 먼저 잡아보았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비일상의 일상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령 대조군을 넣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들 거북목을 한 채 스마트폰을 보는데 오직 한 사람만은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거울을 본다는 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본다는 의미로, 자신의 본질을 향한 내부지향성을 구현한 것으로 해석될 것 같았다. 꿈보다 해몽이지만 나의 의도는 어쨌든 그랬다. 인공지능이 내 의도를 얼마나 구현해 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 몰래 불장난을 하듯 내 가슴이 심하게 뛰는 것만은 분명했다. 떨리는 손으로 핵심 키워드를 입력했다. 지하철이라는 공간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고, 머리 뒤로 난 유리창에는 지치고 힘든 하루였다는 느낌을 주는 도시 야경이면 좋겠다. 핸드폰은 전부 검은색으로 통일시켰다. 다양한 사람들 손에 동일한 검은 직사각형 핸드폰이 들려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각적인 임팩트가 있을 것 같다. 엔터키 위에 놓인 손가락이 대놓고 떨린다. 에라 모르겠다. 딸깍! 와, 우리는 지금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구나! 누가 봐도 지하철 내부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흑인과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표정과 얼굴의 음영까지도 상당히 리얼하다. 근데 정작 거울을 든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인공지능이 나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 것 같다. 언어나 문자로 그림을 그리려는 새로운 시도가 반드시 넘어야 할 문제다. 그 외에 경계 부분에 색이 번진다거나 하는 사소한 기술적 문제들이 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상상력의 높이와 깊이를 과학 기술이 따라잡고 있는 건 아닌가 희망을 봤지만 동시에 섬찟하기도 한 경험이다. 머지않아 사람들이 실사(實寫) 판으로 상상하는 날이 올 것 같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