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영화를 접한 것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서울에 온 초등학교 여자친구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서울 소공동에 있는 샤롯데시어터를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에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로맨스영화인가 생각했고, 다른 많은 분들도 이 영화를 작품성이 있는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으로 기억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의 감성을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영화 속 부자간의 깊은 감정의 교류와 가족 간 고요한 사랑의 전승(傳承)이었다.
남자주인공 팀이 폐암에 걸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옷장을 끝없이 드나들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내 속의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점점 심해짐을 느꼈다.
끝내 자식을 위해 삶을 포기한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보낸 팀의 모습이 나와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불빛처럼 깜빡인다.
마치 고운 손끝으로 영혼의 밑바닥을 훑고 지나는 듯, 척추를 거쳐 뒷골로 몸을 거슬러 계속해서 미세전류가 흘러가듯, 40대의 아들로 그리고 아빠라는 존재로서의 나를 스쳐갔다.
그렇게 이 ‘어바웃타임’은 내 생의 가장 오랜 생채기를 단번에 관통해 한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영화가 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여자친구들도 나 몰라라 화장실로 바로 달려가 눈물 젖은 얼굴을 씻고 또 씻은 다음 몇 달 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발신음 따라 젖은 얼굴에서는 물인지 눈물인지 계속 흘러내리고 목소리는 거센 바람에 포획된 가지 끝 나뭇잎처럼 사정없이 떨렸다.‘---< 뚜뚜뚜 >---’“아버지... 내시더...”“와... 니 무슨 일 있나?.”“어언제요... 사랑...합니다...”‘---< 뚝 >---’ 참으로 못났던 나는 그 순간 더 이상 울먹이지 않을 용기가 없어 버릇없게도 아버지와의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어릴 적 집에 머문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로 사업이란 명목하에 오래 가정을 떠나 있었고 오랫동안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사정으로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애증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시내의 그 많은 다방들을 다니던 추억과 조금 더 커서는 아버지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으려 성큼성큼 빨리 걷는 법을 계속 연습했던 아련한 기억들...! 삼십대 초반의 어느 시점에서는 모종의 일로 참으로 모질게 대들며 나에게 아버지는 죽었다는 생각으로 절을 두 번 하는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
이미 아버지는 진즉에 나를 용서했지만 내 스스로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의 흉터를 새긴 지도 벌써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아버지는 예전의 그 당당한 모습에서 팔십 대 노인의 늙고 힘겨운 모습으로 내 앞에 계시고 나는 여전히 오십 대에 접어든 철없고 못난 불효자일 뿐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는 것처럼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흘러가고 누구에게나 가족은 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한 남자가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리고 홀로 몰래 눈물을 삼키고 있을 나의 아버지에게 또는 아들에게 전화로나마 따뜻한 위로를 건네보면 어떨까? 그리고 아직 ‘어바웃타임’을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을 꼭 포함해 사랑하는 가족들끼리 이 영화를 지금 보는 것도 좋으리라!
찬바람이 옷자락을 파고드는 계절에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저녁이 오고 있다. 따뜻함은 따뜻함을 만나면 더욱 따뜻해지고, 사랑은 사랑을 더해 더욱 사랑하리라!*권재범 씨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점 기역협력과 과장으로 노동청 공직자로 오랜 기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활동하다 2021년 고향 경주로 돌아와 포항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