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아이를 뱃속에 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 형제를 두고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쓴 절절한 편지글이 나무 고유의 향취와 함께 서각 작품으로 승화됐다. 안동에서 발견된 400년 전 편지글 ‘원이 아버님께’가 전통서각 기법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나무에 마음을 새기는 작가, 김진룡 서각전 ‘마음을 새기다’가 25일부터 12월 4일까지 탑동에 위치한 필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작품 ‘원이 아버님께’ 등 서간문을 비롯해 신라향가, 신라명문비석, 연화당초문판 등 전통서각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서각은 문자를 조형화해 나무나 돌, 금속 등의 재료에 새김질하는 작업으로 칼자국이 작품의 질감을 한층 더 높여주는 예술 장르다. 15년 전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에서 우연히 마주한 주련을 보고 서각에 매료됐다는 작가는 그 길로 서각에 입문했다. 그렇게 나뭇결에 한 자 한 자 글씨를 새기며 작가는 옛 선인들의 애환과 지혜를 마주하고 있다. 예리하고 섬세한 칼자국에 부드럽고 온화하게 스민 색채로 구성된 그의 작품에서 단백한 전통 서각의 면모가 드러난다. 특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김진룡 작가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박물관을 수시로 다니면서 연구하고 고민했다. 화려한 각보다 소박한 전통각에서 마주하는 안정감이 좋다는 작가는 화려한 색감이나 추상적이고 관념화적인 표현은 지양한다고. “나무에 새김을 하는 순간만큼은 과거 선인들의 삶과 정서, 지금과 달리 사용하던 한자 등 문자에 내포된 의미를 해석하면서 그들과 교감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자신만의 철학과 마음을 담아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는 작가. 그는 이번 전시가 전통서각의 저변 확대 및 활성화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김진룡 작가는 감포읍장을 비롯해 시청 주요 요직 부서 과장을 두루 거친 후 경주문화재단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 영일만서예대전 초대작가, 고운서예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선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및 경주지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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