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들녘을 가득 채웠던 벼들이 잘려 나가고 하얀 마시멜로우가 드문드문 자리를 대신하는 계절이다. 창밖 논 멍을 사시사철 즐기는 내게 지금은 가장 재미없는, 황량한 계절이다. 그러나 일 년 농사를 지었던 농부들에게는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며 모처럼 여유를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쌀소비량과 반대로 풍작으로 넘쳐나는 쌀수확량에 가격이 내려가면서 올 한해는 농부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다. 그러나 외국 식문화의 유입과 풍족한 먹거리로 인해 쌀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쌀이 부족한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쌀을 제외한 각종 곡물의 자급률은 5%가 되지 않는다. 아줌마도 안 믿었다.
마트에 가면 쉽게 보이는 국산 콩, 곡물들이 넘쳐나는데, 자급률이 5%도 안 된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종 가공품을 생각해야 한다. 콩만 생각해도 마트에 진열된 간장, 된장, 두부를 보자. 국산 콩으로 만든 제품은 눈을 씻고 잘 찾아봐야 찾을 수 있다. 엄마가 되면서, 오지랖 넓은 아줌마가 되기로 마음먹었기에 식생활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식자재에 대해, 식탁 먹거리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식생활 교육을 받기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장보기의 기준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격이 기준이었다면 교육 이후에는 올바른 먹거리냐는 것이 제1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부는 아이들이 쉽게 단백질을 섭취하는 식재료로서 우리 가족이 샐러드로도 찌개로도 자주 애용하는 식품이다. 그래서 유전자변이 콩(GMO)을 배제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공품의 경우 GMO 표시가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 국산 콩을 이용한 제품을 찾는다. 그랬더니 수입 콩과 국산 콩을 이용한 제품의 가격 편차가 컸다. 그러나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절약이 일상생활이 된 아줌마 입장에서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올바른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부는 그나마 선택이 쉬었다. 그러나 된장과 간장은 쉽지 않았다. 국산콩을 이용한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통 요리장인들의 간장과 된장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도 아니었고 유통이나 보관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기업화한 곳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홈쇼핑이나 로컬매장에서 지역농민들이 만든 제품들이 진열된 곳들이 있다.
된장과 간장만 살펴봐도 이렇다. 고추장, 각종 야채들은 어떤가? 우리 동네에는 식자재마트가 여러 군데 있다. 보통 식당들에 유통되는 대용량 식자재들이 진열, 판매되는 곳들이다. 그곳에서 판매되는 각종 채소들을 보면 국내산과 수입산이 골고루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선뜻 국내산을 집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격대가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즉 가정에서 국내산을 고집한다고 해도 외식이나 배달을 이용하는 식재료들은 수입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국내산 식재료의 자급률이 5% 이하라는 말이 허구가 아니다. 밀, 옥수수, 보리, 조, 팥…, 자신 있게 자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없다. 각국의 정상들이 극우주의자들이 하나둘 집권하고, 세계가 경기침체로 들어가는 시점에 반도체도 국가사업이 되어야겠지만 먹거리야말로 국가 정책사업으로 지속 관찰·관리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싼 세상이다. 곡창지대를 보유한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생산을 하지 못하기에 밀가루 등 각종 곡물 가격이 치솟고, 식용유 가격도 올랐다.
먹거리는 생명과 직결된다. 국내산 식자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똑똑해야 한다. 엄마가, 아줌마가 똑똑한 소비를 해야 한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우리나라 농민들을 위해, 우리 자손들을 위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