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다 못해 이제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월요일 오후에 핸드폰이 울렸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영화나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참으로 간단하지만 부담스러운 내용의 전화이다. 책이란걸 담 쌓고 살고,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쳐가는 영화들을 떠올려 보던 중에 갑자기 한 시인의 책이 생각나며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학창시절 정형화된 음률의 시를 배우고 시조의 의미를 해석해서 시험문제를 풀어야만 하던 교과과정에 찌든 나에게 ‘시’란 참으로 재미없는 그 자체였다. 그런 정형화보다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년)’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외치던 ‘Captain! Oh my captain’이 훨씬 더 나의 가슴을 뛰게 하던 시절이라 더욱 그랬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 감수성의 표현 아니면 괜한 반항심이었을지 모를 마음으로 해 질 무렵 경주고등학교 철봉 위에 앉아 노을을 보며 글이라는 걸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복잡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게 좋은 시인가? 언제까지 기성세대의 틀에 박혀 살아야만 하는 걸까? 고민하던 나를 비롯한 X세대에게 해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1992년에 함께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 시인이 바로 ‘원태연’이다. 그 당시 나에겐 원태연 시인의 글이 서태지의 노래보다 더 좋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느껴지는 마음 그대로를 간략하게 담아 옮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깔끔·담백하면서도 공감 100%로 나의 감성을 휘저었다. 굳이 설명하거나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게 ‘좋은 글’인 것 같아서 시집을 항상 갖고 다니며 읽고 소개했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서 2집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를 갖고 다녔다. 이 시집은 특히 소개팅에 나가거나 여자를 만날 때는 꼭 챙겨 다녔던 기억이다. 대중들의 취향과 트렌드는 급변하지만 감성에 대한 공감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집이 출판되고 있음이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시집을 처음 본 이후 나는 고2 때부터 메모로 남기던 글들을 컴퓨터에 저장하기 시작했고 대학시절의 연애사, 친구의 죽음, 군 시절, 배낭여행 등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남기다가 97년 가을에 이 글들을 묶어 1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제본했다. 나의 일기와 같은 글이라 20권만 만들어 나를 잘 아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3권 정도는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들의 책장 어디에 꽂혀있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두 번째, 세 번째 ‘나만의 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은 흘러 졸업하고 직장 다니고 가정을 꾸리며 나이라는 걸 먹다 보니 어느덧 그 꿈은 서서히 흐려져만 가고 내년이면 50살이라는 중년에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게 잠시 접어두고 사는 것일 뿐 첫사랑이나 추억처럼 시간이 지나간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다. 고2 때의 소년은 31년이 지나 49살이 됐지만 아직도 가끔은 그 고딩 때처럼 뭔가 끄적이곤 한다. 다만 이제는 ‘Edward Kim’이라는 필명으로 나의 SNS에 올리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어떤 책 한 권, 영화 한 편, 음악 한 곡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에게 이 책이 그 정도의 존재는 아니지만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의 감정을 생각하고 표현하고 다듬을 수 있게 도와줘서 심적으로 좀 더 포근한 삶을 살게 해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은 퇴근하면 책꽂이 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책’을 다시 한번 꺼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근의 끄적거린 글로 마무리해 본다.■ 사랑하는 것과 사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게 아니라 / 살고 있는 사람이랑 사랑하는 거란다. 2022.06.26■ 술이란 술이란걸 마시면... / 위로 들어가는 가는 줄 알았는데 / 알고 보니 맘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2022.06.26■ 하늘과 마음 하늘이 맑으면 맘과 달라 안타깝고 / 하늘이 흐리면 맘 같아서 아프다. 2022.07.02.- by Edward KIM*김찬형 씨 : 경주출신으로 현재 유안그룹 전략영업본부 상무를 맡고 있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에 ‘형아의 밥상’, ‘아빠의 밥상’, ‘형아의 가족’ 등 이름 끝의 형을 넣어 직접 만드는 요리, 가족간의 에피소드 등을 올리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형아 생각’으로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전하며 주변을 다독이는 따듯한 감성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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